한편 리처드와 수잔의 아이들을 돌보는 멕시코인 아멜리아(애드리아나 바라자)는 하나뿐인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다. 하지만 수잔의 부상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결국 조카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국경을 넘는다.
일본. 청각장애 소녀 치에코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외면에 마음의 상처가 커져간다.
서로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자유분방하게 분할된 시간과 이미지의 조각을 세심하게 짜맞춰 전 지구적 모자이크를 완성한다. 도무지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세 이야기는 결말에 이르러 하나로 맞물린다.
치에코가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듯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소통의 장애를 겪는다. 인종이 다르다고, 문화가 다르다고 이해를 거부하는 우리 마음의 벽은 그 얼마다 단단하던가. 제목 ‘바벨’, 바벨탑은 소통의 장애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는 현대 사회의 다른 이름이다.
복잡한 구성, 두 시간을 훌쩍 넘기는 러닝타임이 부담으로 느껴지겠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이냐리투 감독은 소통의 단절이 빚는 비극을 세밀하게 이어 붙이면서도 진심이 통할 때 만들어지는 작은 기적을 끼워넣는다. 어머니의 자살을 입 밖에 내지 않던 치에코는 아무 말없이 아버지에게 다가가 품에 안긴다. 그렇다. 희망은 찰나에 빛난다.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18세 이상.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