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헌(夕佳軒)’.
저녁이 아름다운 마루…. 헌(軒)자는 마루를 뜻하기도 하지만,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황혼이 깃들어가는 마루에서 바라보는 서편의 저쪽. 붉게 물드는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땅위의 모든 생명에게 온종일 원기와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준 태양의 숭고한 마음이 그토록 곱기 때문이리라. 보람찬 하루를 보낸 사람만이 노을의 아름다움에 젖어 저녁을 편히 보낼 수 있듯이, 인생의 여정을 부끄러움 없이 걸어온 자만이 노년의 황혼을 고운 빛으로 장식할 수 있으리라는 격조있는 가르침이 색깔 곱게 가슴에 와 닿았다.
석가헌.
다시 읽고 있노라니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있는 듯 잔잔한 환상이 그려진다. 마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歲寒圖)와 밀레의 만종(晩鍾)이 동시에 눈앞에 어른거려지는 듯 하다. 글자와 그림은 어차피 같은 표현의 다른 형상이리라마는, 저녁(夕)이라는 뜻이나 아름답다 (佳)는 말이나 마루(軒)라는 글자에서 예사롭지 않은 의미들이 생각나면서 묵과 유화가 복합된 회화적 연상이 글에 서려 비쳐졌다.
다시 한번, 석가헌.
붉은 와인을 테이블에 놓고 정겨운 사람들 몇 명이 함께 하는 분위기 있는 저녁, 촛불은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얼굴을 곱게 비추며 주위를 더욱 붉게 물들인다. 대화 사이사이에 어느덧 바이올린의 선율이 흐르면 와인은 소리없이 자신의 높이를 낮추어 갈 뿐. 음악과 시와 사랑과 로맨스가 있는 아름다운 저녁의 사람들…. 문화란 저녁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 것도 석가헌이 주는 연상이었다.
문화란 하늘에 떠있는 달 같은 것이리라.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않으면 그 뿐일 뿐, 쳐다보지 않는다고 생활에 불편을 느끼거나 손해가 나는 일은 결코 아닌 것.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바라다 본 달빛에서 우리는 잊혀졌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동에 젖곤 한다.
처연한 슬픔이 있거나,사랑에 상처를 받았거나, 아니면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여 무심코 고개를 들어 쳐다본 달빛에서 우리는 잊혀졌던 편안함과 추억으로 가슴이 가득해지는 감동을 느끼곤 하지 않았던가. 공연히 옛 동무가 생각나고 어린 누나가 그리워지는 향수를 달빛에서 느끼게 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앞으로는 가끔 달을 쳐다보며 살아야지 하면서도 아침이 되면 간밤의 달빛은 간데없고 분주한 일상이 우리를 몰아대며 잊혀진 꿈같이 묻혀버리는 것. 달빛은 오늘도 우리를 비추고 있으련만 발걸음을 옮길 때는 보이지 않다가 한 걸음 멈추어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나서야 보이는 여유로움의 회복 같은 것. 해 저무는 석가헌에서 달을 찾는 마음으로 문화와의 해후를 생각해 보았다.
불교에서는 극락정토를 서방세계라고 한다지만 달이 뜨는 서쪽은 평안과 열반이 열리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또 다른 세상이다. 인간의 내면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표현의 본성을 최선의 절제로 정제해 낸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 그것을 예술이라 한다면 문화란 또 예술이 들어 사는 집과 같은 것이리라.
살기위해 몸부림치다가 가끔은 몸을 편히 뉘이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에 익은 선율에 귀 기울이며 잊었던 사랑이나 잃어버린 낭만이나 없어졌던 여유를 다시 찾고 싶을 때 들를 수 있는 작은 집이 있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하루의 고단함을 어루만지며 예술을 감상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문화의 집을 서쪽 노을이 빗겨가는 달이 보이는 기슭에 지으리라.
석가헌이라 이름 짓고….
석가헌 이야기는 그러한 집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하고 담담한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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