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군무를 한참 바라다보니 황지우시인의 시 한편이 떠올랐다.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 일렬 이열 삼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여기에 을숙도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텃새는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철새인데 녀석들은 몇 가지 부류로 나뉜다. 한국에서 월동하는 겨울새가 흔히 말하는 철새다. 반면에 봄철에 찾아와 번식하고 다시 남하하는 뻐꾸기나 제비가 여름철새다.
또한 봄과 가을에 한국을 통과만 하는 나그네철새가 있는데 도요나 물떼새가 대표적이다. 녀석들은 본능적으로 종족보전을 위해 번식지와 비번식지를 오간다. 그런데 이 ‘철새`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인다. 오로지 개인적 이익만 추구하는 ‘모리배`의 상징이 바로 철새다. 모리배가 다양하듯 철새도 여러 가지고,,,
고백컨대 나는 대학교 시절 ‘철새`의식을 경험했다. 1980년 9월 ‘서울의 봄` 덕에 부활되었던 총학생회가 해산되고 학도호국단 체제로 되돌아갔다. 3월에 출범한 총학에서 편집부장을 맡았던 나는 고민에 빠졌다. 발단은 교지 ‘보운(寶雲)` 제 11집이었다. 이미 특집과 르포의 취재가 마무리되었고, 원고청탁은 물론 표지화까지 의뢰한 상태였다.
이러한 정황 속에 학단의 학술부장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온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했다. 5.17 광주민주화항쟁을 진압하고 들어선 신군부의 체제에 합류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故 오원진선배를 비롯한 동지들이 수감된 상태였다.
하지만 2월 졸업까지 발간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다며 설득해왔다. 결국 교지 발간만 맡는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실제로 전방시찰과 산업단지 순방 등 학단의 대외적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 ‘철새`라는 원죄 의식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아무튼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각 캠프마다 ‘정치교수`가 몰린다는 이야기다. 폴리페서는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를 합성한 말로 정치에 참여하거나 참여하기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대는 교수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이 폴리페서는 당연히 ‘철새` 범주에 들어간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정치교수가 판을 친다. 대학이나 연구집단 출신들의 정관계 진출을 당연시하고 권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철새`들을 기획주의자로 몰아 우호적이지 않다. 이런 양국의 차이는 바로 ‘투기성` 여부다. 미국에서는 추천을 통해 캠프에서 영입하는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교수들이 제 발로 기웃거리며 대박을 노리는 배팅이 많았다. 정치권에서도 학계에 자리를 빌미로 참여를 부추겨 왔다. 철새의 부류가 몇 가지듯 정치교수로 나서는 길도 다양하다.
가장 바람직한 길은 각 캠프가 엄밀한 검증과정을 거쳐 영입하는 것이다. 수락 여부는 전적으로 당사자 판단이지만 객관성을 담보하는 길이다.
강의와 학문 연구에 쏟을 시간과 정력이 정치활동으로 피해가 예상된다면 거절할 것이다. 그래서 원칙과 소신에서 비상을 결행하는 ‘철새`는 아름답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데 사람이라고 주저앉아 울분만 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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