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맛에 취한 탓인지 그 누구의 입에서도 야당 할 각오를 외치는 이는 없다. ‘창조적 분열에 의한 재창출’ 운운하고 변명(언어의 修辭)을 내세우고 있으니 정말 염치없는 얼굴들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듯 여유 있는 자세를 보인다. 경선 승리가 곧 등극(登極)이라 보고 1, 2위(여론조사) 간에 격돌 직전의 설전(舌戰)까지 벌이고 있다.
이명박 측이 ‘애를 낳아보지 않은 여인은 모성애와 산고 같은 걸 모른다’고 비아냥대자 박근혜 측은 발끈하며 ‘군대를 안 간 사람은 군통수권을 행세할 수가 있는가’라고 응수한다. 거기에 한수 더 떠 ‘검증’소리를 연발, 무엇인가 비밀병기를 갖고 있다는 식으로 연신 으름장을 놓는다. 이는 경선과정의 일로 ‘가십 거리’에 불과한 설전이지만 당내에선 양 후보의 상처를 걱정하는 눈치다.
요즘 한나라당 주자들이 대전겷力껑퓽?드나들며 이미지 부각에 열을 올리는데 여기서 눈에 거슬리는 건 ‘행정수도 불가론’을 집요하게 외친 인사가 묘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어 안타깝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지난 1월 재경향우회 신년교례회 때 기막힌 구호가 등장을 했다. ‘엄청도의 새 지평을 위하여!’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멍청도’가 아닌 ‘엄청도’를 외쳤는데 이는 기린아 이완구 지사의 ‘강한 충남’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눈길을 끈다. 과거 우리 충청인에겐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 우리를 자극한 일이 있었다. ‘멍청도’, ‘핫바지’, ‘느림보’, ‘대타자(代打者)’ 심지어는 ‘무정란(無精卵)’이라 매도한 사례가 그것이다. 이는 청색과 황색 두 축이 각자 이해에 따라 지어낸 말이었다.
충청인이 왜 ‘핫바지’이며 ‘무정란’이란 말인가. 패거리 정치가 판을 치고 광란을 칠 때도 중심을 잃지 않고 늘 중심을 지켜 온 충청인이다. 부산, 대구에서 청풍이 북상을 하거나 목포 광주에서 황색 사풍(砂風)이 몰아쳐도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았던 충청권은 풍진가도(風塵街道)가 아니라 ‘로터리’ 구실을 하며 지방색을 걸러냈다.
그것은 ‘중용(中庸)’이며 ‘완충(緩衝)’인 동시에 횡격막(橫膈膜)이었다. 선거 때마다 타 지방에선 95~98% 몰표를 던져 왔지만 충청권에선 이 고장 출신 윤보선과 김종필이 출마를 했을 때도 80%를 준 일이 없는 매우 냉철한 곳이었다. 하지만 딱 한 번 지난번 지방선거 때 대전 시민이 흥분한 일이 있었다.
시장과 구청장, 시의원을 몽땅 한나라당에 몰아준 것이다. 한마디로 좀 지나쳤다. 대의정치에서 싹쓸이가 있어선 곤란하며 독점, 완승(完勝)이란 있을 수 없는 낱말이다. 해묵은 이야기다. 싱가포르 총리 이광요와 군사정권의 모 지도자가 주고받았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지도자가 “국민의 95%는 말을 잘 듣는데 나머지 5%가 골칫거리”라고 하자 “정치란 95%의 내 패도 중요하지만 나머지 5% 때문에 정치는 존립하는 것”이라는 이광요의 말이 예사롭지 않다. 요즘 또 다시 충청권 역할론이 기세를 부리지만 우리는 지난날의 ‘자민련’식 돌풍에 굳이 향수를 느낄 필요는 없다.
당당하게 각자 소신껏 표를 던질 때 그것이 기개요, 역할이라 보기 때문이다. 4월에 있을 대전 서을 선거는 대선에 영향을 주고 각 당의 위상과 충청인의 기개를 드러내며 또 그것은 ‘충청권의 역할’과 직결되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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