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어떤 이슈가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될 때 ‘마땅히` 부각되어야 할 지점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상황이라면 그 원인을 파헤치고 대책을 찾는 게 정석이다. 행정도시에 입주할 대학의 선정이 현안이라면 이 도시의 자족성 확보와 조기 활성화를 위해 수도권 소재일지라도 명문대 유치가 바람직한지, 아니면 행정도시가 지역분권의 결정체인 만큼 수도권 대학을 배제하는 게 타당한지가 논쟁의 중심이 된다. 엉뚱한 대목에서 논란이 비화하면 그건 코미디다.
지난달 3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6년 하반기 조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여기에는 1970년대 ‘긴급조치 위반사건 판결분석 보고서`가 포함되어 있다. 당시 판결에 관여한 판사 492명의 명단도 별첨자료에 수록했다. 역사의 실체를 밝히고 사법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는 기회로 삼자는 취지다. 하지만 논란은 예기치 않게도 판사들의 실명 공개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어느 나라든 떠올리기 부끄러울 정도로 수치스러운 과거를 갖고 있다. 어떤 나라는 사실관계를 엄격히 따진 뒤 과오를 떳떳하게 반성하고 그 토대 위에서 미래를 설계한다. 독일이 그렇고, 프랑스가 그랬다.
특히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나치에 부역한 지식인들을 엄정하게 숙청했다. 다른 부역자보다 지식인을 엄중 처벌한 이유는 일반시민에 비해 이들의 잘못된 행위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형이 집행된 지식인 수는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일제 부역자는 물론이고 독재시대의 잔재마저 확실하게 청산하지 못했다. 과거사 청산은커녕 역사적 진실을 바로 알자는 얘기만 나와도 사회적 갈등을 부추긴다거나 ‘인민재판`이라는 식으로 논쟁의 초점이 변질되곤 한다.
이번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조사보고서를 공개한 위원회는 정치적으로 편향되었으며, 명단 공개는 정치공세라는 주장 따위가 그렇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지난 2005년 여야 합의로 통과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의거해 구성된 기구일 뿐이다. 여기에는 한나라당과 대법원장 추천 위원들도 포함되어 있다. 명단 공개는 이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사항이다.
한 가지 일리 있는 항변이 있기는 하다. 법관으로서 당시의 실정법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래서 30년이 지난 뒤의 상황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실정법보다 양심을 우위에 두고, 심지어 법복을 벗은 판사들도 있었다.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법관들이 자기가 쓴 판결문에 대해 겸허히 반성하기에 앞서 시대를 탓하는 자세는 아무래도 궁색하다.
사회적 의제에 대한 갑론을박은 좋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가 말했듯이 서로 다른 의견은 부딪힐수록 견고해져 진리에 가까워지는 법이다. 하지만 정작 알맹이는 뒷전으로 밀리고 곁가지만 붙들고 늘어지는 식의 논쟁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실소조차 나오지 않는 코미디일 뿐이다. 누가 성찰이 필요한 사회적 이슈를 재미없는 코미디로 바꿔치기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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