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수 전 대덕구청장 |
인권변호사의 뿌리이자 대부인 이병린 변호사가 지은 ‘양심수(良心囚`라는 시조다. 그 자신 이른바 6.3 사태와 관련해 구속된 이력을 갖고 있던 이 변호사가 담장 하나로 천리나 멀어져있는 양심수를 걱정하는 애틋한 마음이 잘 다가온다.
군사독재시절 이병린 변호사와 함께 활약하다 구속된 이돈명 변호사가 있다. 인권변호사의 맏형격인 이돈명 변호사가 어느날 구속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나중에 조선대총장도 지낸 그의 혐의는 국가보안법상의 범인은닉죄. 이부영 전 국회의원을 자신의 집에 숨겨 준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1986년 당시 이 전의원은 직선제개헌 관철을 위해 인천집회를 가지려하다 당국에 의해 공개수배된 터였다. 그런 이 변호사가 1심 재판에서 난데없이 재판거부와 함께 항소 포기를 선언했다. 이유는 재판부한테 올바른 심판을 받을 수 없으니 ‘역사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마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로 느껴지고 용어 자체도 낯설어진 양심수 문제를 새삼 거론한 것은 최근 사법부를 뒤흔들고 있는 긴급조치위반사건 파문 때문이다. 30년이란 세월을 격해 리바이벌되고 있는 ‘긴조사건`을 보노라면 ‘역사의 법정`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하는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모 일간지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입수한 판결분석보고서를 단독보도하면서 촉발된 이 사건은 분명 사법부를 강타하는 메가톤급 태풍이 아닐 수 없다.
급기야 진실화해위에 의해 1970년대 긴급조치위반사건 1412건을 유죄판결한 판사 492명의 명단이 일제히 언론을 타자 당사자격인 사법부측은 불만섞인 반응과 함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망각의 장막 뒤에 숨어있던 ‘긴조의 망령`이 30년만에 햇빛 속으로 걸어나온 듯하다.
벌써부터 법원 안팎에서 “포퓰리즘” “코드에 의한 인적청산기도”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때가 때인지라 정치권도 민감하다. 한 대선주자는 “나에 대한 정치공세”라며 음모론적 시각에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법부는 지금 총체적인 신뢰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긴조사건 파문이 있기 며칠 전 내려진 인혁당 재건위사건 재심판결도 ‘사법살인`의 실체를 충격적으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독일의 비극`의 저자인 역사가 마이네케는 “어떠한 역사적 위기의 뒤에도 과거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고 말했다.
과거는 과거로 묻어둘게 아니다. 특히 되살아난 과거에서 우리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긴조사건이나 인혁당사건과 다시 만난 자리에서 “법대로 판결했을 뿐” “기억에 없다”는 식의 퉁명스런 답변을 늘어놓는 판사들한테 우리는 진정한 자기성찰을 발견할 수 없다. 오로지 보신주의와 익명(匿名)에로의 도피 밖에 목격되지 않는다.
물론 이번 사태가 어떤 마녀사냥식의 인적청산으로 흘러가서는 안된다. 또 대선정국에 정략적으로 활용되는 일이 있어도 안된다. 그럴 경우 우리는 과거청산과 사법개혁을 이룰 절호의 기회를 또 다시 놓치게 된다.
억울하게 희생된 당사자와 가족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국가차원의 보상도 서두를 일이다. 현재 대법원에서 재심대상사건들을 자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지만 현행법상 한계가 있다면 국회와 협조해 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사법부가 직접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성역`에서 걸어 나와 국민의 사법부로 새롭게 환골탈태해야 한다. 이 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이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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