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6년 전, 1991년 1월 29일.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던 9살 형호가 유괴됐다. 범인은 87차례나 협박전화를 걸어왔고, 부모는 44일간 피를 말리다가 결국 죽어도 못 잊을 슬픔을 맞았다. 형호는 한강 둔치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영화는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을 재연(再演)하지만 주요 인물들은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고 손을 찧어서 시꺼멓게 변해도 아픈 줄 몰랐다”는 아이를 빼앗긴 부모의 처절한 심정에 초점을 맞췄다.
상우는 통통하긴 해도 귀여움이 넘치는 9살. 어느 날 줄넘기를 하러 나간 상우가 갑자기 사라지고 1억 원을 요구하는 유괴범의 협박전화가 걸려온다. 방송 앵커인 한경배(설경구)는 범인의 요구에 따라 이 곳 저 곳으로 허겁지겁 끌려다니고, 견디다 못한 아내 지선(김남주)의 신고로 경찰은 비밀수사본부를 꾸리고 추적에 나선다.
유괴당하고 변사체로 발견되기까지 부모의 44일을 기록한 영화는 피가 마른 부모처럼 지극히 건조하게 진행된다. 냉정하리만큼 ‘포커페이스’의 시선은 답답한 절박함을 극대화한다. 결을 만드는 건 돈 가방을 끌어안고 범인의 요구에 따라 달려가는 설경구와 전화기에 매달려 울부짖는 김남주의 심금을 울리는 연기다.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핸드헬드를 사용한 시각적 효과는 김남주의 흐느끼는 듯 떨리는 목소리와 만나 관객의 가슴을 헤집어 놓는다.
대의명분이 워낙 분명한 탓에 다른 목소리를 내기란 영 꿉꿉하다. 그래도 영화는 완성된 영화 자체로 이해되어야 하므로 말해야 할 건 해야 한다면, 한마디로 지루하다. 협박전화-부모의 울부짖음-경찰의 엉뚱한 추적의 반복에 영화가 주는 무게감까지 겹치면 러닝타임 122분은 앉아있기가 괴롭기 짝이 없다.
같은 영구미제사건을 다뤘음에도 부조리에 대한 풍자, 인간에 대한 연민 등이 오밀조밀 살아있었던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면 아쉬움은 더 커진다.
다만 영화가 믿는 우리 사회에 대한 순정, 그 순정에 대한 직설적 언급이나 개인의 아픔을 사회적 공분으로 확장하려는 연출 의도가 영화적 형식과 맞닿은, 충무로에서는 흔치 않은 작품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범인을 잡자’는 박 감독의 의도는 확실히 전해졌고, 이제 우리는 그 놈 목소리를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12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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