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제봉 국제로타리 3680지구 전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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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에는 이색적인 뒤주하나가 있었는데, 그 뒤주는 당시 끼니도 이을 수 없는 빈민들을 상대로 배고픔을 달래주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차원에서 마련해 놓은 것으로서 쌀을 넣는 입구는 담 안쪽으로, 쌀을 받아내는 출구는 담 바깥쪽으로 내 놓아 정말 굶기 직전에 있는 사람들을 구제해 주기위해 궁리해 낸 옛 선조들의 숭고한 지혜가 그대로 스며져 있다.
그리고 쌀을 꺼내는 구멍의 마개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 즉, ‘누구든 쌀을 마음대로 퍼갈 수 있다`라는 뜻의 문구가 새겨져있다.
당시 은조루의 주인이 마을사람들에게 베푼 쌀이 한 해 수확량의 20%나 됐다고 전하는 것을 보면 주인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감과 결단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최근 모일간지의 보도에 의하면, 광주시 서구 금호1동사무소가 은조루의 뒤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운영하는 ‘사랑의 쌀뒤주`가 있는데 지난 1월25일로 설치 한 돌을 맞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뒤주 위에는 당시의 ‘타인능해(他人能解)` 의뜻을 인용해 ‘미안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따뜻한 밥을 지어 드세요`라고 써 붙여 놓았다고 한다.
동사무소에 따르면 이 뒤주에서 지난 한 해 동안 80Kg들이 137가마에 해당하는 11,000Kg의 쌀이 제공되어졌고, 이 뒤주를 이용한 계층은 주로 혼자 사는 노인이나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등 주로 경제활동이 어려운 사람들로서 하루 20여명이 한차례에 2Kg 안팎씩 퍼다 밥을 지어먹었으며, 연 인원만 해도 약 5,000여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이 뒤주의 쌀은 동사무소가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이웃들인 금호1동에 있는 병원, 할인점, 건설회사, 교회 등이 뒤주의 바닥이 채 보이기도 전에 쌀을 채우고 있으며 아직도 상당량의 쌀과 현금이 남아있다고 한다.
비록 230여 년 전 우리 옛 조상님들의 후덕함을 모방하였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심은 아직도 변하고 있지 않고 살아있음을 단적으로 표현해낸 이 시대 최고의 미덕이 담겨진 쾌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옛날이야기처럼 되어버렸지만 1960년대 이전만 해도 우리에겐 춘궁기와 함께 보릿고개란 것이 있었다. 지금 세대에겐 쉽게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한 해 동안 거두어들인 곡식을 겨울 내내 먹고 지내다가 쌀이 바닥이 날 때쯤인 이듬해 봄철에서부터 여름철 보리 수확이 되기 직전까지의 끼니를 이어가는 시기를 보릿고개라고 일컬었다.
우리에겐 현실적으로 넘쳐나는 실업자에다 뛰어오른 아파트값으로 인해 내 집 마련조차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살아가기가 힘들다고는 하지만 먹을거리와 입을 거리가 풍부하리만큼 풍요로운 지금 세대들은 보릿고개 이야기를 하면 ‘쌀이 없으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었으면 되지 않았느냐`고 난센스 퀴즈 같은 답으로 응수한다.
어쨌든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소치에서 한 말일 테지만 보릿고개와 같은 암울했던 과거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더 불어함께 가난을 극복해낸 옛 조상님들의 지혜와 음덕을 기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비록 어느 한 작은 동사무소에서 비롯된 이러한 선행들이 전국으로 확산되어져서 최소한 쌀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아가는 굶지 않는 우리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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