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전시연구팀장 |
일찌기 선학들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관념과 기술, 조직이라 설파하였다. 관념이 정신문화를 상징한다면 기술은 물질문화를 대표한다. 관념과 기술이 적절이 조화롭게 상생하면 인류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다. 물질문화를 대표하는 기술이 관념화 하면 곧 과학이 된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은 관념과 기술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우리의 현대 첨단과학기술은 세계를 이끌어 가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에 못지않게 우리 겨레가 남긴 모든 물질문화의 핵심과 콘텐츠들을 “과학한류”로 거듭나도록 해야 하겠다. 즉 우리 고유 겨레과학기술의 한류를 꿈꿔야 한다. 단순히 옛것이라고 치부하기 보다는 옛것에 담긴 우리만의 독특한 관념과 기술을 끄집어내 첨단 과학기술과 용어로 포장하는 브랜드 “과학한류”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겨레과학기술의 과학한류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겉모습만을 가공한다던가 어설프게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만으로는 안된다. 그것은 오히려 과학한류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과학한류를 제대로 하려면 본질과 원형을 찾아야 한다.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모습에 먼저 매달리다보면 본질을 잃어 버려 우리 겨레의 과학슬기에 변화를 가져오기 보다는 변질을 초래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 겨레과학기술에 대한 과학한류의 올바른 정립을 위해 겨레과학기술의 원형(prototype)을 찾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하겠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면, 우리 과학한류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큰 한지의 경우, 한지의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개량한지라는 이름으로 한지의 첨단화, 세계화를 이루겠다고 하지만 개량한지는 엄격한 의미에서 고유한지가 아니다.
우리 겨레가 끊임없이 추구해온 한지는 닥나무와 황촉규, 잿물 등 천연물질과 한지를 뜨기 위해 개발한 한지발로 외발뜨기를 하여 만든 닥종이가 진정한 우리 한지의 모습니다. 이 한지에 쪽, 홍화, 치자 등 천연염색기법으로 염색한 색지가 색종이의 원형이 된다.
닥섬유의 흉내만 화려하게 내고 화학약품과 화학염료를 써서 만든 소위 개량한지는 잿물한지의 원형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원형을 찾고 본질을 잃지 않도록 도구와 설비도 아울러 응용 개발할 때, 우리 한지는 명품으로 자리 잡게 되고 소비자의 기호를 자극하여 과학한류의 뿌리를 굳건히 내릴 것이다.
천연염색의 경우도 우리 겨레의 발효염색기술의 원형을 제대로 찾아내고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 새로운 기법들을 접목하여 명품으로 승화시켜가야 할 것이다. 근대 화학염료가 인류에게 보편적이고 화려한 색의 세계를 가져다 주었다면 우리 고유의 천연염료들은 우리겨레는 물론 세계속에 색에 대한 깊은 사색과 관념을 가져다 줄 것으로 확신한다. 단순히 색소를 추출하고 현대 화공 매염제를 써서 얻어 낸 것을 가지고 마치 우리 고유의 천연 염색이라고 눈가림해서는 곤란하다.
예를들어 쪽빛하늘이라고 일컬을때 그 쪽빛은 쪽풀을 잿물과 조갯가루등을 써서 발효시키고 산화와 환원반응을 자연스레 활용하여 얻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기전(매커니즘)과 공정에 대한 원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기법과 공정의 개발이 이루어져야 우리 겨레과학기술이 진정한 과학한류로 자리잡아 세계속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 겨레과학기술의 원형을 담고 있을 옛 과학기술 문헌의 철저한 분석과 연구, 즉 관념에 대한 깊은 탐색과 기술·기법의 원형과 본질의 탐구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학한류의 성공을 꿈꾸며 과학기술부에서는 국가지정연구실(NRL)사업과 겨레과학기술응용개발사업(국립중앙과학관)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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