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강덕 언론인 |
박문수는 전라도 고을에서 학정이 극심했던 탐관오리들을 평정한뒤 한양으로의 귀경길에 올랐다.
당시 전라도 땅에서 한양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청도 땅을 지나쳐야했으며 어사 박문수의 고향인 천안 땅도 그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랜만에, 그것도 민원을 홀가분하게 처리하고 난 뒤의 귀경길에 꿈에 그리던 고향땅을 지척에 둔 박문수는 ‘고향에 들러 쉬었다 갈까`, 아니면 ‘그냥 지나쳐야 할까`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향이 아닌 다른 지방이라면 어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고향에선 자신의 행색이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어사인줄을 다 알 터이고, 특히 관아에서 그냥 보낼 리가 만무하리라는 판단이어서 관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지나쳐가기로 결심,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안성을 지나치면서 해가 저물기 시작했고 곧이어 고갯길이 나타났는데도 고향을 완전히 벗어나서 하루를 유숙할 요량으로 고개를 넘기로 했다.
혼자 휘적휘적 넘어가는데 민가는 나타나지 않고 길은 멀고 땅거미까지 어둑어둑 져가고 있어 여간 적막한 게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날씨마저 무더워 땀은 비오듯하고 피곤한지라 잠시 땀을 식힐 요량으로 길 옆 바위턱에 앉아 쉬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앞길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양반차림의 촌로한 사람이 숨이 턱에찬 목소리로 “여보시오. 나좀 숨겨주시오. 바로 저 고개 밑에서 산적을 만나 이곳까지 도망왔는데, 이젠 힘도 빠지고 더는 어쩔 수가 없소. 산적이 날 잡으면 바로 죽일테니 나 좀 구해 주시오”라며 애걸복걸하는 것이었다.
수행하는 병졸들만 있다면야 걱정할 일이 없을 테지만, 공무가 끝나면서 그 휘하의 병졸들은 먼저 올려보낸 터라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걱정만 하고 있을 계제도 아니어서 길옆 숲으로 숨으라고 일러주고는 자신은 태연히 앉아 땀을 닦는 척하고 있었다.
조금 지나자 소란스런 발자국 소리와 함께 산적이 나타났는데, 한명도 아니고 셋이서 어울려다니는 패거리들인데다 손에 손에 날이 시퍼런 장검들을 들고 있어 어쩌지 못하는 신세가 되버렸다.
“이봐, 보아하니 거지인 것 같은데 우리가 묻는 말에 거짓없이 대답하면 살려줄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이 장검이 그냥 보내지는 않을테니 알아서 하게나. 방금 이 길로 양반 한명이 도망쳤네. 길은 외길이니 못 보았을 리는 없을테고 어디에 숨겨줬나”라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더는 어쩌지 못하고 숨겨준 곳을 알려주고 말았다.
가까스로 생명을 부지한 박문수는 고개를 넘어 민간에까지 내려와서 유숙하며 양반을 살려내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자괴감에 빠진 박문수는 서둘러 귀경길에 나섰다가 마을 어귀에서 장난치며 놀고 있는 어린이들을 발견, 천진난만한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한 어린이가 어사 박문수에게 다가와 “아저씨, 무슨 걱정이 있나본데 무엇 때문에 그래요? 눈이 빨간 걸 보면 잠을 못 주무신 것 같네요.”라며 말을 걸어와, “얘야, 내가 어젯밤에 이런 일을 당했단다. 그래서 고민하며 밤을 세웠지. 너같으면 어떻게 했겠니"하고 물었다.
눈을 깜박이던 그 어린이.
박문수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 “참 어른들은 바보예요. 그 산길에 나뭇가지 하나도 없었나요? 나뭇가지를 꺾어 들고 장님행세만 했어도 그 양반을 구했을 수 있잖아요”라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옳거니, 무릎을 친 박문수.
이 사건이후 그 어린이의 대답을 교훈삼아 평생을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지 않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습관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요즘은 참으로 답답하고 암울한 시대다.
어사 박문수가 어린이에게 지혜를 빌리듯 타인의 주장도 경청하는 슬기가 필요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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