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월 초면 선생을 기리는 난계축제가 열린다. 봄철의 연분홍 진달래나 가을에 빨간 감이 지천인 정감어린 고향. 청록파 시인 박두진은 <영동을 지나며>라는 편지글에서 ‘소박한 자연에 안기어 새로 어린 춘색에 나는 겨울을 벗어난 사슴과 같이 즐겁고 안온합니다.` 라고 했다.
나 역시 영동 소리만 들어도 혜산처럼 안온하다. 존재의 뿌리이자 회귀의 원점인 영동. 그 고향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바로 가리(加里)의 어사송(御使松)이다. 영동과 추풍령 중간 1번국도 옆 가리마을 어귀에 서있는 아름드리 어사소나무. 수형이 늠름한 낙낙장송은 어사 어윤중(1848-1896)이 심은 소나무다.
어윤중은 충북 보은 출생으로 암행어사를 몇 해 지냈다. 탐관오리를 문책하고 궁핍한 백성들에게 관곡을 나누어주는 암행어사는 숱한 일화와 전설을 남겼다. 그런데 가리 어사송은 좀 특이한 사연을 갖고 있다. 마패를 차고 전국을 누볐던 어 윤중이 한양과 부산 천 리길 그 가운데라 심었다는 것이다. 구름도 쉬어가는 추풍령을 경부고속도로의 중간으로 보는데 맞는 것 같다.
여기에 1908년 경부선 개통을 담은 <경부철도가>를 보면 신빙성이 더해진다. 육당 최남선(1890-1957)은 ‘고당개를 바라보며 심천에 이르니 / 크지 않은 폭포가 눈에 뜨이고 / 그 다음은 영동역 다 이르러서는 / 서울과 부산 사이 절반은 온 셈이라`고 읊었다. 이렇게 보면 어사소나무는 서울과 부산의 한가운데를 상징하는 훌륭한 랜드마크인 셈이다.
랜드마크는 말 그대로 특정 지역을 상징하는 표지물이다. 일반적으로 타워나 초고층빌딩을 꼽는데 남대문이나 63빌딩이 서울의 랜드마크다. 지금 세계는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고 관광수익을 올릴 수 있는 초고층빌딩 건설 붐이다. 1999년 말레이시아는 독립기념일에 페트로나스타워를 오픈했다.
미국 시카고의 시어스타워보다 불과 10m 높지만 세계 최고층인 451.9m. 국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했고 영화 ‘미션임파서블` 촬영지가 되면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후 또 다른 바벨탑이 세워졌다.
대만의 ‘타이페이금융센터`인데 101층에 508m나 된다. 이 빌딩은 현재 세계 최고층이지만 곧 1위 자리를 내주게 된다. 삼성건설이 두바이에 짓고 있는 ‘버즈두바이` 빌딩인데 160층에 700m나 된다.
여하튼 서울에서는 새로운 랜드마크 신축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용산 철도차량기지 13만 4천 평에 들어설 빌딩의 충수가 문제인데 한국철도공사와 서울시가 맞붙었다는 것이다. 공사 측은 210층으로 세계최대의 중소기업월드센터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이고, 서울시는 도시경관을 고려 100층 이하로 층고를 제한하겠다는 대립이다.
최근 대전에서 랜드마크 신축 논의가 시작되었다. 과연 대전의 랜드마크는 무엇인가? 한밭의 랜드마크는 서울처럼 세계와 견줄 필요가 없다고 본다. 층수보다 대전의 역사를 함축하고 역동적인 미래를 아우르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지난해 착공한 28층짜리 쌍둥이 철도타워도 훌륭한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철도와 함께 발전한 대전을 상징적으로 대변하지 않겠는가?
흔히들 대전처럼 무색무취한 도시가 없다고들 말한다. 그것은 용전동 로터리의 ‘대전탑`을 일거에 헐어버리듯 우리 모두가 역사의식이 부족해서 그렇다. 대전 사람은 한밭의 역사를 지키고 보듬어야 한다. 마음이 떠난 자리에 랜드마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대전이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영동 가리 어사송이 늘 내 마음에 살아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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