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숙 유성초등학교 교사 |
집에 갈 준비로 신발까지 챙겨든 대휘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 교실로 들어와 물었다.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졸업식 때 누가 무슨 상을 받을 것인가 협의하는 일이지.”
수업 시간의 설명이 부족했는지 아이는 내 이야기를 한참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아이가 돌아간 후 졸업생사정규칙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졸업생사정은 시험 성적, 수행평가 결과, 임원 경력, 수상 경력 등을 비롯한 그 밖의 여러 항목의 점수를 합산하는 과정을 거친다.
시험 성적이나 수행평가 결과는 겉으로 드러나지만 그 밖의 가산점을 받으면 등위가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혹시라도 억울하게 상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있을까 봐 우리 반 35명의 점수를 모두 따져보았다. 아이들에게 항목을 미리 공지하였기 때문에 ‘대충`, ‘내 맘대로` 순위를 매길 수도 없다.
이렇게 미리 시상을 위한 점수 기준표를 작성함으로써 의문을 제기하는 아이 누구에게나 정정당당하게 순위를 공개할 수 있다. 오해와 불신도 막을 수 있다. 주관적인 잣대에 의해 아무나 상을 준다면 상을 받는 아이도 떳떳하지 않을 것이며, 억울하게 떨어진 아이도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상이라는 것은 정말 그 상에 걸맞게 잘 한 이에게 주어졌을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100m 달리기를 하는데 1등을 2등이라 하고, 2등을 1등이라고 한다면 1등이 된 아이가 진실로 기뻐할 수 있을까? 게다가 2등으로 밀린 아이의 항의에 ‘너는 매번 1등이니까 이번에는 상을 양보해.` 라고 한다면 수긍할 수 있을까? 물론 밖으로 등수가 뻔히 드러나는데 그렇게 할 어리석은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다. 정정당당하지 못한 처사는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일반 사회나 학교나 다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공명정대하게 수상자를 선정하지만, 간혹 자기 사람 봐 주기나 미운 사람 배척하기로 불미스런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관련자들은 사건을 은폐하거나 사건의 진상을 호도하기 일쑤다.
게다가 결론이 나기까지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된다. 갖고 있는 직위나 직책으로 입을 막으려는 시도가 자행되기도 한다. 그래도 안 되면 제보자를 인간성 나쁜 사람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故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법관은 세상 사람으로부터 의심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교사 또한 법관과 다르지 않다. 나 또한 그런 실수를 범하지 말라는 법 없다. 혹시라도 내가 맡고 있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나 스스로 한 점의 의혹도 받지 않기 위해 아이들의 성적을 꼼꼼하게 확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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