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환영 KBS 대전방송총국장 |
연주회가 끝난 후 아름다운 선율에 취해서 콘서트홀을 나서던 사람들의 흐뭇한 표정에서 모두들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냈음을 느꼈다. 필자의 지방도시 대전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기분좋은 일종의 문화충격으로 시작되었다.
필자가 근무하는 방송국 근처를 돌아보니 근사한 문화예술의 공간들로 둘러싸여 있다. 우선 아름답고 우아한 대전문화예술의 전당 건축물이 넉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예술의 전당의 연간 연주일정을 보니 다양한 장르의 수준 높은 연주회로 연말까지 꽉 차있어서 대전시민들은 일년 내내 풍성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는 시립미술관이 위치해 있다. 지난해에는 그 유명한 루오전이 열렸고 올 봄에는 세계적인 화가 이응노의 작품 전이 열릴 것이라고 하니 지방도시의 미술관으로서 대단한 기획이 아닐 수 없다. 또 이응노전이 열릴 전시관 건물은 지난 주 준공되었는데, 세계적인 프랑스 건축설계사가 설계한 것으로 대전의 또 하나의 명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대전은 대덕연구단지로 대표되는 과학의 도시요, 금년 첫삽을 뜨게 되는 행정복합도시로서 뿐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의 도시로서도 서울에 못지 않을 듯 하다.
문화예술 하면 떠오르는 도시가 프랑스 파리다. 필자는 10여년 전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몇 차례 신선한 문화충격을 경험했다. 한번은 우리의 자랑스런 소프라노 조수미 연주회가 파리시내 쌀 쁠레옐 콘서트홀에서 열렸는데 당시 로열석 입장료가 300프랑 (우리돈 6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세계 정상급 연주회임에도 불구하고 입장료는 예상보다 비싸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로열석과 A,B,C석외에 노인과 실업자를 위해 싼 요금의 좌석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실제로 백발의 노부부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그런 연주회에 백수들이 얼마나 갈 것인지는 모르지만 돈 없는 실업자들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배려하고 있었다.
해외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가족들과 함께 말로만 듣던 루브르박물관을 관람하려고 한껏 기대에 부풀어 갔는데 입구에서 예상치 못한 가방 소지품 검사를 당했다.
우리 가족들의 가방에서는 그날 점심으로 준비해 갔던 샌드위치와 바나나, 그리고 생수병에 담은 누런 보리차가 적발되었었다. 모든 문화예술 공간에서는 보이지 않는 엄격한 수준의 에티켓이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파리 시내 세느 강변에는 쁘띠빨레라는 200~300년 전에 지어진 아름다운 궁전이 있다. 그곳에서는 연중 미술전시회가 열리는데 1996년 가을 쯤 파리가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도시임을 입증하는 특별한 기획전이 열렸다. 연일 100미터가 넘게 관람객이 줄을 서 기다릴 정도로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세잔느의 화풍은 어떻게 변화되어 갔으며, 동일한 소재에 대해서 어떻게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했는지를 한눈에 비교 분석할 수 있게 했던 그 전시회는 기획자의 탁월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만든 또 하나의 걸작이었다.
잘 다듬어진 문화예술 공간은 도시의 품격을 말해준다. 문화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잠재적 수요가 그 도시의 문화정책과 그것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의 뛰어난 기획으로 충족되어질 때 도시는 아름다워지고 시민들은 행복해진다. 머지않아 파리의 시민들도 와서 즐길 수 있는 문화예술의 도시로 대전이 훌쩍 성장할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