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에 관련한 여러 표현과 속설은 대체로 부정적이거나 폄하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탐욕과 불결, 무개념과 우둔으로 집약되는 고정관념은 마땅히 정확하고 과학적인 근거와 논리로 바로 잡아야하지 않을까.
먹이욕심에 있어 돼지는 흔히 생각하듯 제 욕심만 채우기 보다는 나눌 줄 아는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다고 한다. 먹을 것을 탐하는 사람을 돼지에 비유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또한 돼지는 일정한 장소에 변을 가려보는 습성이 있다는데 돼지하면 떠오르는 추함과 비속함은 주로 사육환경의 열악함 때문은 아닐지.
영양면에서도 그간의 연구성과에 힘입어 하나둘씩 돼지고기의 우수한 성분이 밝혀지면서 광우병을 염려하는 수입정육과 비싼 가격이 부담되는 한우사이에서 소고기를 대체할 강력한 먹을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장수하는 주민들의 선호식품이 삶은 돼지고기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생태습관이나 식용에 대한 이러저러한 평가도 그렇지만 돼지의 외형과 품성이 인간에 비유될 때 오해와 편견의 편차는 더 커지지 않을까. 단순히 겉모습과 주관적 인상으로 우리는 숱한 오해와 이기적인 합리화에 반성 없이 안주해오지 않았던가. 중국고전 ‘서유기’의 저팔계를 비롯하여 동서양의 많은 작품들이 돼지나 그 이미지를 직, 간접 소재나 등장인물로 삼아 인간성의 편협과 간사함을 풍자, 비판해왔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프랑스 작가 모파상의 ‘비계 덩어리’ 역시 외모와 신분이 주는 선입관으로 이용한 뒤 매몰차게 외면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고발하였다. ‘목걸이’라는 단편에서도 그러했듯이 모파상은 인간내면에 자리 잡은 본능과 허위, 이중의식 그리고 삶의 허망함을 간결하고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비계 덩어리’는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방 창녀의 별명이다. 무대는 1850-60년대 프러시아 점령 하 루앙에서 디에프로 향하는 합승마차 안. 비계 덩어리라고 불리는 뚱뚱한 매춘부를 비롯하여 상인 부부, 의원 부부, 백작 부부, 수녀 등을 포함하여 10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 창녀에게 눈독을 들인 프러시아 장교가 마차 출발허가와 교환조건으로 하룻밤 동침을 요구한다.
갖은 교언과 설득을 펼친 승객들의 요구에 마침내 굴복하여 ‘비계 덩어리’는 프러시아 장교와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 마차는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승객 중 아무도 이 ‘은인’을 상대하지 않았다. 전날처럼, 항상 그래왔듯이 멸시와 백안시, 모욕적인 언행만이 더욱 강렬해졌을 따름이다.
인간의 위선, 이면성과 간사함을 선명하게 묘사해 놓은 이 작품에서 ‘비계 덩어리’ 창녀가 겪는 황당한 모멸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돼지에게 건넨 집단평가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돼지해인 올 한해, 돼지에 대한 합당한 재평가도 거치지 않은 채 뜬금없이 황금돼지를 들먹이며 재물운과 개인적 번영만을 기원한다면 19세기 노르망디 합승마차에 탄 지체 높고 우아한 승객들의 위선, 이기심과 무엇이 크게 다를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