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창기 천안쌍용고 교장 |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 목소리를 소유한 그분의 전화를 맨 처음 받은 것은 제가 우리 학교에 부임한 다음 달이었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통의 전화가 늘 걸려오기에 그날도 별 생각 없이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교장선생님 요즘도 학교에 다니기가 어려운 학생이 많이 있습니까?”
갑자기 당한 질문이기도 하고 인사도 없이 누군지도 모르는 분의 갑작스런 질문은 저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예, 누구시죠?” 저도 당황하여 간단히 인사를 드린 후 말씀드렸습니다.
요즈음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이지만 아직도 가정의 빈곤으로 인하여 안타까운 제자들이 많이 있음을 설명 드렸습니다.
그 분은 우리 학교 부근에 살면서 학생들의 등교 모습을 늘 대하며 당신이 고등학교 시절 어려웠던 기억이 떠올라 가정이 어려운 학생을 돕고 싶다며 매달 20만원씩 보내준다는 고마운 전화였습니다.
전화를 끝내고 저는 너무나 고맙고 궁금하여 발신자 전화표시에 적힌 전화로 그분께 다시 한번 고맙다는 전화를 드렸습니다.
다시 걸려온 전화에 당황하시며 당신의 모습을 끝까지 드러내지 않고자 했는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시며 난감해 하셨습니다.
저는 너무 고마워 다시 전화 드렸노라 말씀드리고 학교에 한번 방문해 줄 것을 간청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다음 달부터 어김없이 학교 통장에 장학금 20만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하루는 그 분의 전화가 왔습니다. 바로 경상도 그 분이었습니다. 학교를 방문하여 저와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반갑게 고마운 그분을 맞이했습니다. 그분이 살아온 길과 그분의 생각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보니 저도 모르게 그분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첫 모습이었지만 검소하시며 돈이 많아서 이런 일을 하시는 분 같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이야기 가운데 이 세상에 태어나 조금이라도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평생을 선생으로 살아온 저로서는 부끄러움이 앞섰습니다.
그분에 관한 더 많은 내용을 그분과의 약속 때문에 소개하지 못함이 아쉽기만 합니다.
저는 "일정 금액이 모아지면 어려운 학생을 추천해 드릴 테니 직접 오셔서 전달하시죠." 하고 말씀드렸더니 갑자기 안색이 바뀌며 "그러면 다시는 안 오겠습니다." 하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러면 뜻대로 학교에서 처리하겠습니다." 하며 달래며 보내 드렸습니다. 그 멋있는 분이 어제 학교에 또 방문하셨습니다.
"뜨거운 커피 한 잔 주십시오." 하며 제 사무실을 방문하셨습니다.
편지 봉투에는 어김없이 20만원의 장학금이 들어 있었습니다.
지난 달 보다 더욱 건강하시고 활력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커피 한잔을 급히 마시고 현관을 나가는 뒷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장학금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름 없이 뜨거운 사랑만 넘치는 장학금 "사랑의 장학금"으로 명명 하였습니다.
지난 연말에는 5명의 학생에게 30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하였습니다.
밝게 웃는 학생들의 미소 뒤에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교장선생님 뜨거운 커피 한 잔 주십시오.”
우리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며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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