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현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대전`충남지회 부지회장 |
수업 중 한 학생이 지은 ‘운명’이라는 시를 보았다. 보내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당신을 보내드린다는 초등학생답지 않은 내용이 나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짧은 기간의 보잘 것 없다고 여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놀라운 변화를 본 것이다.”
위 글은 ‘2006 예술놀이로 여는 행복한 가정 만들기’ 라는 주제로 지난 해 5월부터 7월까지 장동지역아동센터에서 서예를 가르친 선생님들의 후기이다. 23명의 올망졸망한 아이들의 눈동자와 마주했던 문화예술교육사업의 이유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문화예술교육은 소외된 저소득층 한 부모 가정 어린이들의 외로운 꿈을 만져 주며 가족의 따뜻한 품을 알게 하고, 스스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힘을 심어준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은 정책 용어이면서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개인의 경험과 현장에 따라 다양한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본다. 문화예술교육이란 예술작품에 이르는 높은 계단을 만들어 놓고 다리 장애를 입은 장애우들에게 ‘왜 올라오지 못하느냐’고 추궁하거나, 계단을 오르는 리프트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유지한 채 평평한 땅에 뿌리내리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묻는다. 기초예술과 순수예술이 콤플렉스 남성, 빈곤 여성, 비정규노동자,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새터민, 노인, 장애우, 도시빈민과 얼마나 같이했는지? 또 인간이 찾는 보편적 의미와 삶이 처한 공동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관계를 맺었는지?
문화는 삶의 자율성을 키우기도 하지만 개인 간 경쟁을 부추기는 도구일 수도 있다. 문화산업과 문화자본에 대한 이야기는 현대 사회의 경쟁력의 핵심이기도 하며 사회적 차별을 유지하는 기제임을 보여준다. 교육에 있어서 전통 교육패러다임은 삶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과 무관하다.
교육 제도와 교사의 역할, 교육방식 등은 일상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정당성에 대한 감각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학습과정 자체가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사이에 위계적 서열을 재생산하고, 선행 지식을 전달하는 형태로 단순화되어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공공시설은 텅 비어 놀고 있다. 많은 예산이 투자된 문화기반시설들의 기능은 정지된 채 관성적인 사업들이 진행 중이다. 문화기반시설에는 운영자와 관리자만 있을 뿐 프로그램 기획자나 지역사회 활동가들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몇 개의 문화기반시설에서 선구적인 노력들이 이루어진 바 있다. 그 성공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획자와 예술가와 향유자를 연결하고, 지역사회라는 준거 속에서 학교 안팎의 자원을 연결시켜 낸 소중한 경험이 존재한다. 사회와 지역을 통합하고 학교 안팎의 유기적인 연계, 이것이 지역문화예술교육이 수행해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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