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도시, 이기적인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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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도시, 이기적인 도시

  • 승인 2007-01-09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이런 가정을 해본다. 어떤 도시가, 정말 착한 몸매를 봤을 때와 유사한 끌림이나 설렘을 준다면 자치시대, 세계화시대에 단연 앞서지 않을까. 오나가나 색깔 없고 판에 박힌 브랜드 슬로건 경쟁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하이 서울, 다이내믹 부산, 잇츠 대전, 충남 하트 오브 코리아, 유어 파트너 광주, 해피 수원, 울트라 울산….

세간의 유행어대로 ‘착한’ 슬로건 일색이다. 이때의 착함은 어수룩함과 동격이 아니요, 남에게 잘 속는 미련함이나 남을 해치는 술수도, 착하면 손해본다는 피해의식마저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까 착한 가격이라면 값이 싸다는 뜻이며 착한 얼굴은 예쁜 얼굴, 착한 몸매는 잘빠진 몸매를 지칭한다. 불가에선 탐욕과 성냄과 해침이 없는 기억을 착한 기억이라 한다던가.

좋다(good), 아름답다(beautiful)는 긍정의 말은 아무튼 기분 좋게 한다. 이런 식의 어법을 경향 각지의 지자체 모두가 열을 올리는 지역 브랜드에 대입한다면, 희미한 그림자의 파편 하나가 실체적 진실보다 진한 진실의 순도를 품을 수도 있겠다는 얘기다. 대전의 프라이드 동구, 웰컴투 중구, 퍼스트 서구는 이 조건에 합당한가. FAST 천안, 어메니티 서천은 어떤가. 어메니티(Amenity)는 쾌적한 환경을 포괄하는 아주 ‘착한’ 말이지만 어려워서 흠이다.

감동은 그만두고 미끈둥하고 사람을 저릿하게 하는 뭔가가 빠져 있다. 착한 몸매, 착한 커피에서의 착착 감겨드는 말맛이 없다. 일단 선점한 테마가 공감을 얻으려면 첫째로 지역주민의, 다음으로 방문객의 마음이 중요하다. 그 점에서 ‘웰컴투 중구’가 적힌 청소차를 볼 때마다 안쓰럽다. 대한민국이 즐겨 찾는 중구를 만들겠다니 의지는 가상하나 ‘동막골’체의 슬로건은 선거 캠페인으로 남았으면 더 좋을 뻔했다.

‘Hi Seoul’! 슬로건 인지도 90%로 짧은 기간에 서울을 컨벤션 도시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대전컨벤션뷰로(국제회의 사무국)를 만들어 한창 공들이는 대전시가 참고할 만하다. 호미걸이나 하려는 게 아니지만, 이 말이 외국인 귀엔 “당신, 서울에게 인사하시오” 정도로 들린다는 주장이 있다(최용식, ‘한국영어를 고발한다’, 넥서스).

그런 식으로는 바이 대전(BUY-대전)은 대전을 팔아먹자는 소리로 알아듣지 말란 법이 없다. 완벽하게 검증된 영어가 아닌 엉터리 콩글리시로 된 졸속 마케팅은 지역 이미지에 먹칠하는 자해행위다. 보아(BOA)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지자체가 있어, 웬 보아일까? 했더니 민원처리 전에 안내하고 과정을 공개하고 뒤에 책임진다며 Before, Open, After를 줄인 것이라 한다.

개념이 애매하고 철학이 모호해 주민이 갸웃거릴 지경이면 지역 가치를 떨어뜨려 안 하느니만 못하다. 친절해 보일까봐 눈두덩을 시뻘겋게 칠하고 다니는 ‘친절한 금자씨’ 같은 행색도 금물이다. ‘얼굴(정체성) 착해, 성격(고유성) 착해, 몸매(진정성) 완전 착해’―이러한 자긍심을 못 심어주면 도시마케팅은 실패로 마감된다. 먼저 한다고 모두 내 것이 되지도 않는다.

필자에게는 평양소주 병 뚜껑의 ‘착한 소주’ 슬로건에 뒤끝 개운한 이미지가 꽂혔던 기억이 있다. 역시 제품은 공장에서 만들지만 브랜드는 고객의 마음에서 구매되는 것이었다. 주인공 이름만 지으면 작품 다 쓴 것 같다는 글쟁이가 있는데, 슬로건도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변하지 않는 주제를 찾아 일관성으로 버무리면 그게 지역 브랜드 정체성이다.

어느 개그 프로그램 코너다. 명품관에 도착해 곱창이나 닭발을 찾는 일순간, 사모님의 우아함이 망가지는 상황. 지자체의 시책이 객석을 한바탕 뒤집었다가 시치미 뚝 떼는 그 “운전해∼” 사이클을 흉내내선 안 된다. 기본에 충실하고 공공에서부터 실천하는 착한 문화전략, 거기에 수십·수백 배 투자는 얹어야 ‘아이러브뉴욕’처럼 공항에도 펄럭이고 모자에서도 빛을 발한다.

착한 걸 보면 왜 기분이 좋아지는가. 지자체들은 그걸 찾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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