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영 언론인 |
반 총장이 “세계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평소 자신의 직무는 물론, 후진국 외국사절에게까지 최선을 다한, 충청도 음성 촌사람의 인간승리다. 지난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저녁자리에서 반 총장이 소개한 탄자니아 대통령과의 인연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아프리카 빈국에서 온 외무장관을 강대국 장관들과 똑같이 대접했는데, 어느 날 그 장관이 대통령이 돼있더라는 것이었다.
그분은 그것을 “운이 좋았다”고 간단히 결론지었지만, 사실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뽑힌 탄자니아가 반 후보를 앞장서서 도와주었음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것이 세상살이고, 이런 것이 인생살이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이루어지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다 된 것 같은 일도 막판에 틀어지는 게 우리네 삶이다.
그러나 충청도에 그렇게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분만 있는 게 아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충남대를 나와 행정고시에 패스한 내 친구는 경찰에 투신한 뒤 승승장구했는데, 지난 해 12월 졸지에 사표를 내고 말았다. 고향에 밀리고, 배경에 밀린 게 원인이었다. 지위와 직급을 막론하고, 충청 출신 가운데 이런 상황에 처한 공직자들이 지금 한둘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국정원장 같은 힘 있는 자리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부처의 이사관까지 PK(부산`경남)와 호남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말로는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면서도, 충청권 출신 공직자들은 사실상 “국민”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 나라를 IMF 수렁에 빠뜨려놓고서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 큰소리치는 것은 아직도 PK라는 믿을 만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몇 천억 원을 퍼주었다고 비판을 받으면서도 국민들이 낸 혈세 수백 억, 수천 억 원을 들여 컨벤션센터를 지어주는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직도 호남지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80노구를 이끌고 법정에 선 이유 역시 지역과 권력의 왜곡된 역학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는 내각제를 매개로 대통령과 총리에 오른 DJP가 하루아침에 국민과의 신성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것을 보며 미련 없이 그분 곁을 떠난 사람이지만, 우리 지역의 원로지도자가 자식뻘 되는 법관에게 선처를 비는 것을 보며 피가 거꾸로 서는 기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공주향우회에서 강조한 “충청권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발언 역시 이런 상황과 크게 맥을 달리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분이야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자 명문대학을 발전으로 이끈 탁월한 교육CEO(최고경영자)라서 조용한 톤으로 말씀했지만, 울음에 피를 담고 있다는 두견새인들 이보다 더 간절하게, 이보다 더 곡진하게 충청도 양반들을 깨우칠 수 있을까.
이번에야말로 나라의 중심에 서서, 시대를 주도할 것이냐, 아니면 또 다시 여기에 속고, 저기에 휘둘릴 것이냐 ― 이것은 결국 우리들의 자각과 결단에 달려 있다. 충(忠)은 중심(中心)이며, 심중(心中)이다. 충청인들이 흔들리는 이 나라의 중심을 잡고, 충청인들이 심중에 한 토막 붉은 마음을 품어 이 시대의 중심축 역할을 해야 한다.
시대상황은 충청인의 자각을 촉구하고 있다. 멍청도냐, 엄청도냐? 우리가 결단해야 할 순간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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