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을 보고 이 책을 샀다. ‘장남(長男)’, 왜 ‘일남(一男)’이라 하지 않고 장남이라고 했을까? 장남으로보다는 일남으로 살아 온 세월, 이 책에서 찾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겠지.”
동생 결혼식장에서 아버지께서 앉아계셔야 할 혼주 자리에 대신 앉아서 떠 올려 보던 소회가 항상 주변에서 맴돌고 있어서였을까?
그렇다. 늘 마음 한곳에 그림자처럼 자리하고 있는 장남이라는 자리와 맏형의 역할을 다하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을, 비록 그 책에서 정답은 찾지 못할지라도 “그래, 맞아”하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껴보고자 하는 속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좋은 형제’의 이야기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형제애가 부러우면서도 “장남과 맏며느리는 하늘에서 내려준 사람”이라든지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은 속담으로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증명하듯 스스로 제몫을 잘 해나가는 네 삼촌들이 고맙다.
명절이나 제사 때 친척들이 큰댁에 모이던 의미와 추억, 그리고 “장형(長兄)은 반부모(半父母)”라며 큰형님께 세배를 올리던 네 할아버지의 형제분 간 존경과 우애를 떠올려 본다.
추석 전 네가 “연휴에 외국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장손이 차례에 빠지면 할아버지께서 서운해 하실 텐데?”하니까 “아! 그러네요”하면서 선뜻 뜻을 접는 것을 보고 너 또한 ‘장(長)’자의 DNA를 지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때로는 장남도 울고 싶다”는 지은이의 독백에 공감이 가는 것은 장남의 무게를 무의식 속에 담고 살아서일까? 아이를 한둘만 낳는 현실에서 앞으로는 장남의 의미도 엷어지겠지만 ‘일남’보다는 ‘장남’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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