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헌·수상투적 대사 작품의 독창성 흐려
병헌·수애 뛰어난 감성연기 빛나
로이 클락의 ‘예스터데이 웬 아이 워즈 영(Yesterday When I Was Young)’이 흐른다. “편백나무 잎은 사랑을 부른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시대상황은 순수한 사랑조차 난도질 해버리고, 단 한 번의 사랑은 가슴 시린 사랑으로 남는다.
3선 개헌 반대로 대학가가 술렁이던 1969년 여름. 산골마을로 농촌봉사활동을 나온 석영(이병헌)은 이 마을 도서관에서 일하는 정인(수애)을 만난다. 석영은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정인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둘의 사랑은 계몽적이면서 기존 멜로영화의 규칙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상투적인 대사와 우연성의 반복은 작품의 독창성을 모두 먹어치웠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상품성을 갖는 건 두 배우의 감성연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은 오롯이 이병헌과 수애의 영화다. 두 배우가 내뿜는 여름 향기는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도 잔향이 남을 만큼 진하다. 멋지고 예쁘고 연기 잘 하는 선남선녀가 눈부신 시골 풍광을 배경으로 아름답고 가슴 시린 사랑을 속삭이고 있으니 빠져들지 않을 사람 누가 있겠나.
석영과 정인이 소나기를 피해 처마 끝에 앉아 수박으로 유치한 대사를 주고받아도 다 용서되는 게 빠져들었다는 증거다. 정인이 뒤에서 몰래 다가가 석영을 놀라게 하는 숱하게 봐 와 식상한 장면도 석영이 키스를 하려고 일부로 화난 척 몸을 구부려 정인에게 다가가는 닭살 돋는 대목도 석영과 정인은 물론 관객조차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 ‘사랑에 빠지면 다 그래’하는 공감일 터이다.
이병헌은 그가 소화해냈던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역시 멜로가 딱 이라는 사실을 자신에게조차 일깨운다. 20대와 60대를 넘나드는 희로애락의 감성연기는 여성팬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수애는 그 자체로서 한 폭의 동양화다. 신비한 아우라가 느껴질 만큼 영화의 빛을 한층 맑게 한다.
둘의 사랑을 가로 막는 건 계급 지식 이념 가족배경 같은 시대상황이다. 아버지가 좌익운동을 하다 월북했다는 이유로, 우연히 시위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고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고문이 무서워 사랑하는 사람을 모른다고 해야 하는 시대다. 석영은 “모르는 여자입니다. 나완 상관없는 여자입니다”라고 눈물 맺힌 말을 하고 만다. 가슴에 돋는 슬픔을 묻고 돌아선 남자는 그 때 그 손을 놓지 말았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를 한다.
‘감독의 예술로서의 영화’라는 쪽에서 본다면 ‘그해 여름’은 낙제점이다. 괜찮은 시나리오, 좋은 배우, 디테일한 묘사까지 곁들였는데도 정서적 전달력은 약하다. 주인공이 지독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관객의 공감을 얻기에 부족하고 현재와 과거의 플래시백 구조는 연관성을 갖지 못한 채 삐걱댄다. 감독의 연출력이 아쉬운 작품이다. 영화가 관객의 사랑을 받는다면 그것은 온전히 이병헌과 수애, 두 배우의 몫일 것이다. 12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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