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편집부장 |
노정객(老政客) 들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위해 15일 공주대를 찾았다. 명목은 박사 학위 수여식 참석과 특별 강연이지만 정치적 행보임은 부인할 수 없다. 지난 4일 노무현 대통령과의 사저 회동 이후 DJ는 정계개편의 큰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DJ와 ‘필생의 라이벌’ 인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김종필 전 자민련총재(JP)도 17일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여론을 의식, 연기했다. 40여 년 한국정치 전면에서 활동하다 퇴장했던 팔순 노정객들의 ‘부활’ 인 셈이다. JP는 13일 청구동 자택을 찾은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를 만나기도 했다.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 예고 없이 찾은 심 대표에게 JP는 “내년 대선은 영남과 호남, 동서로 나눠질 것” 이라며 “충청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했다고 한다. 확실한 답을 주지 않는 JP 특유의 선문답이다. 충청권 맹주의 역할은 하되 누구에게 도움을 줄지 말하기엔 시기상조라는 의미다.
노정객들이 정치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쇠락과 끝이 없는 정쟁에 기인한다. 지난 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김한길 원내 대표의 말대로 열린우리당의 ‘정치 실험’ 실패와 끝이 없는 정쟁은 노정객들의 등장과 지역주의가 발호할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정권 재창출이 어려운 여당은 통합신당 출범을 위해 DJ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형국이다. 10%대에 머물고 있는 정당지지도로 대선을 치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당이 정계개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배경이다.
지난달 28일 고향 목포를 찾은 DJ는 ‘무호남 무국가(無湖南 無國家)’ 라는 글을 남겼다. ‘호남의 자긍심’에 대한 덕담이겠으나 ‘결집’을 자극하는 의미도 있는 듯하다. DJ의 이 같은 행보는 정권이 교체될 경우 최대 치적으로 삼아 온 ‘햇볕정책’ 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도 한몫 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내년 대선까지 YS와 JP도 영남권과 충청권에 대한 지역 연고를 바탕으로 DJ와 비슷한 행보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정치의 시침(時針)을 거꾸로 돌려 놓는게 아니냐는 비난이 있지만 ‘3김 행보’ 에 불을 지핀 것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정치현실이다. 측근들은 부인하지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정계복귀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물러났던 노정객들까지 돌아오고 있는 정계개편의 중심에는 충청 유권자의 선택이 자리하고 있다. 역사가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 라면 정치사 역시 같다. 과거의 선거 결과는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된다. 1997년의 15대 대선과 2002년 16대 대선의 물줄기를 바꿔 놓은 것은 충청 유권자의 선택이었다. 여야 정치인들이 충청권에 끊임없이 구애하는 까닭이다.
공자는 정치가 무엇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정자정야(政者正也)” 라 했고 “가까운 자가 기뻐하고 먼 데 있는 자가 찾아오는 것” 이라고도 했다. 또 “진실로 제 몸을 바르게 하면 정사를 베푸는 것이 무엇이 어려우며, 제 몸을 바르게 못하면 백성을 어찌 바르게 할 수 있겠느냐” 고 했다. 정치의 요체는 바르게 함이요, 국민을 기쁘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사회적 갈등과 대립들이 정치의 틀 안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어지러운 현실을 타개하는 방법은 국민들의 현명한 판단밖에 없다. 그 중심에 충청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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