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청춘영화까지 총 16편 23일부터 상영
봉준호 감독과의 만남.히치콕 강좌 등 마련
깊어가는 가을, 낙엽 타는 냄새처럼 추억으로 이끄는, 삶의 여백을 쓰다듬는 넉넉한 손길 같은 영화가 한 자리에 모인다.
대전아트시네마가 겨울 문턱에서 조촐한 영화 잔치를 준비했다. 이름하여 ‘둔지미영화제’. 23일부터 11일간 열리는 이번 영화제는 달리 붙은 부제는 없지만 굳이 붙이자면 ‘시민 모두 함께 보고 즐기는 영화제’ 쯤이 될 것 같다.
그만큼 메뉴가 다양하다. 중장년층을 향수에 젖게 할 고전영화 서부영화가 있는가 하면, 청소년들이 동류의 치기와 고민, 젊음의 희열을 공감할 수 있는 젊은 영화도 있다.
차이밍 량, 허우 샤오시엔, 페드로 알모도바르, 배창호의 아트영화도 있고, 김종관의 단편 작품집 ‘낙원으로의 초대’는 창작을 꿈꾸는 이들을 기다린다. 쉽다. 깊다. 관객의 마음을 가져간다. 향수에, 웃음에, 현대인의 초상에, 청춘까지 모두 16편이 상영된다.
▲추억의 명화, 향수에 젖어=빗속에서 ‘싱잉 인 더 레인’을 부르며 춤을 추는 짐 켈리(사랑은 비를 타고)와 옥수수밭에서 비행기에 쫓기는 캐리 그랜트(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추억 속으로 안내할 주인공들. 제목 ‘북북서…’(North by Northwest)는 ‘노스웨스트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어느 쪽이 옳은지 확인하려면 영화를 보는 수밖에 없다.
‘성난 황소’를 비디오(‘분노의 주먹’으로 출시됐다)로 보았다면 꼭 영화를 보길 권한다. 비디오는 화면의 양 옆이 잘린 데다 삭제된 부분도 많아 이 영화의 가치를 발견하기 힘들다. ‘성난 황소’는 봉준호 감독이 추천한 작품. 봉 감독과 영화를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26일, 오후 6시 상영분)가 마련돼 있다.
세르지오 레오네, 엔리오 모리꼬네라는 이름을 기억한다면 ‘석양의 갱들’은 놓칠 수 없다. 60년대 히피 문화의 상징 ‘이지 라이더’, 고전 명작 ‘자전거 도둑’을 패러디해 광고가 어떻게 명작을 망치는 지를 그린 이탈리아 코미디 ‘비누도둑’도 볼 만하다.
▲소통의 부재-현대인의 초상=배창호 감독이 반갑다. ‘깊고 푸른 밤’ ‘고래사냥’ 등으로 80년대 한국영화를 풍성하게 했던 그다.
이번 상영작 ‘길’에선 빛바랜 사진 속으로 들어간다. 배 감독은 대장장이의 여정을 통해 자신의 영화미학과 인간의 원형질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허우 샤오시엔과 차이밍 량은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거장들. 허우 샤오시엔의 ‘밀레니엄 맘보’와 차이밍 량의 ‘애정만세’가 상영된다. 두 영화 모두 삶의 근원적 비애와 동시대인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시끌벅적’하고 ‘알록달록’하기로 이름난 페드로 알모도바르. ‘비밀의 꽃’에선 ‘키치 악동’이란 훈장을 반납하고 상처 입은 여성을 진지하게 그린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유명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금발의 초원’, 프랑스와 오종 감독의 담담한 도발 ‘5×2’, 프루트 챈 감독의 홍콩 3부작 중 첫번째, ‘메이드 인 홍콩’도 스크린에 오른다.
▲청춘-공동의 노래=‘박치기’는 재일조선인을 사랑하게 된 일본 고등학생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1968년 교토의 파란만장한 풍경을 힘차게 그렸다. 조선인들의 분노와 슬픔을 한바탕 소동으로 전이시키는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의 솜씨가 유쾌하다.
낯설고 서투른 배두나의 연기가 오히려 생기를 불어넣는 ‘린다 린다 린다’. 물에 빠진 생쥐 몰골의 소녀들이 “시궁창 쥐처럼 아름답고 싶어. 사진에는 찍히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으니까”하고 노래하는 그 순간의 희열과 감동은 오래오래 남는다.
▲특별한 만남, 진지한 토론=봉준호 감독에 이어 영화평론가 김영진 씨의 강좌도 마련된다. 28일 오후 7시, 히치콕 감독 강좌. 독립영화 작가 김종관 감독도 관객들과 만난다(29일 오후 8시). ‘대전지역 영상문화의 다양성을 위한 정책제안’을 주제로 세미나도 열린다.
입장료는 어른 6000원, 중고생 5000원. 감독·평론가와의 만남 섹션은 1만원. 문의 042-472-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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