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내장“뭐하러 찾아 왔어? 바쁠 텐데.” 11일 오후 7시 대전시 동구 대동. 인근에 있는 대학들로 활기를 띤 바로 밑 번화가 주변과는 달리 창고처럼 지은 조그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대동 1-685번지는 을씨년스럽다. 이곳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무판자로 지은 집들이 많았다. 독거노인, 장애인 등이 많은 이른바 쪽방촌.
대동종합사회복지관을 뒤로 쪽방촌 입구에 들어서자 낡고 허름한 단층짜리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 비좁은 골목 안쪽으로 몇 걸음 옮기자 수 십 년 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정순이(90)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드르륵” 문소리에도 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그는 6평 남짓한 조그만 방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누워있었다. 문 옆 작은 부엌에는 오래 쓴 양은냄비와 몇 가지 양념통, 라면이 구석에 쌓여 있다. 여느 쪽방 사람들처럼 단촐한 살림살이다. 벽에 걸려 있는 옷들로 벽지는 거의 안보일 지경이고, 방 안에서도 입김이 날 정도로 냉기가 옷 속을 파고든다.
사회복지사(장승미)가 가까이 다가서 할머니의 귀에 “밤인데 불도 안 켜고 뭐하세요?”라고 크게 말하자 그 제서야 사람이 온 것을 알고 “왔구먼. 추운데 고생이 많구먼”이라고 대꾸했다. 그는 백내장이 근래에 더욱 악화돼 사물을 거의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전엔 손과 발로 물체를 감지했지만 무릎관절염이 심해져 그마저도 힘든 상황이다. 그는 이곳에서 하루 세끼 식사를 해결한다. 정 할머니의 식량은 대동종합사회복지관에서 하루 한번 점심 때 배달해 주는 도시락이 전부다. 도시락 한 개를 세끼로 나눠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그마저도 속이 좋지 않다며 굶기 일쑤다.
생활의 대부분을 남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정 할머니는 관할 구청으로부터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주민등록상에 손자와 함께 이름이 올라 있기 때문. 공장에 다니는 손자는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그나마 손자가 집세와 관리비를 해결하고 있지만 생활은 어려운 상태다.
시선 없는 그가 툭 던진 한마디가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빨리 죽어야 되는데, 살아서 뭐해, 이젠 더 이상 욕심도 없어….” 어느덧 가로등에 비친 창문이 밝아졌다. 쪽방촌에 한 집 두 집 불이 꺼지며 깊은 늦가을 밤이 시작됐다. 가장 가난한 사람만 남은 비탈진 마을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후원 문의 대동종합사회복지관 ☎042-673-8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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