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같은 처지 장애인들의 친구로
‘홀로서기’ 가르치며 보람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로
우리 주변에는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혹자는 ‘봉사’란 생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 사치품 정도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결코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봉사가 아니다. 자신의 처지도 돌봄을 받아야 하지만 남을 위해 살겠다는 마음 하나로 더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찾는 이들도 있다.
불편한 몸으로 더 불편한 이를 돕는 이도 있다. 부족한 시간과 부족한 돈을 쪼개서 어려움을 나누는 사람들이 더더욱 많다. 이기적인 사람들로 척박해져 가고 있다는 현대사회에서 봉사의 향기는 향기롭기까지 하다. 쌀쌀하게 얼어붙은 마음을 봉사의 훈훈함으로 녹여보자. (편집자 주)
취재 내내 ‘별로 한 것이 없는데, 부끄럽다’는 말을 거듭했다. 하지만 시각장애와 청각 장애를 동시에 가진 중복장애인 조영찬(36)씨와 척추장애를 가진 작은 몸집의 김순호(44)씨 부부가 더욱 어려운 처지의 장애인을 위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필자가 부끄러웠다.
120Cm 남짓 작은 키를 가진 척추장애인 김순호씨는 장애우들 사이에서 ‘작은 엄마’라고 불린다. 김씨가 활동하는 대전 ‘미문선교회’내에서는 이미 유명인사.
10여년전, 그녀는 선교회 내에서 15명 안팎의 장애우들을 모아 그룹홈을 시작했다. 본인이 장애를 겪으면서 ‘외로움’에 가장 힘들었던 만큼 가족과 친구들에게 외면 받는 이들의 마음을 받아주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김씨는 ‘혼자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에게 김치 담그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각자 할 수 있는 분야를 정해주고 분담을 통해 완성품을 만들도록 했다. 무조건 도움만 받아야 한다는 그들의 인식을 깨주기 위한 시도였다.
반찬도 만들고 시장에서 물건 사는 법도 가르치며 장애우들의 엄마 노릇을 해왔다.
“장애우는 집밖으로 나가면 갈 곳이 없어요.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도 없어서 장애우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죠.”
김씨는 지금 새로운 봉사를 하고 있다. 바로 시청각 장애인 조영찬씨를 돌보며 더욱 값진 봉사를 하는 것이다. 어릴적 열병으로 시각장애에 이어 청각까지 잃어버린 조씨는 ‘큰 봉사’를 실천하고 있었다.
그의 봉사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시청각 장애인들에게 ‘점화’를 보급하는 것.
시각장애인이라면 소리로 대화를 할 수 있고 청각장애인이라면 수화로 대화할 수 있지만 중복 장애우에게는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용하게 된 것이 ‘점화’다.
필자가 취재를 하는 사이에도 두 부부는 손가락 위에 손으로 타자를 치는 듯한 행동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점화는 중지부터 약지까지 3 손가락 위에 점자를 찍어서 대화하는 방식으로 두 부부가 주고받은 행동이 바로 점화.
지난 8월 조씨는 일본시청각장애인대회에 한국대표로 초청을 받아 참여했다.
이곳에서 그는 일본의 시청각 장애우들이 점화를 통해 자유롭게 대화하고, 공부와 직장생활 등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다.
조씨는 한국에 돌아와 점화 보급에 힘쓰기로 결심하게 된다. 아직까지 시청각 장애우들의 모임조차 만들어지지 않아 어려움이 많지만 그의 노력은 대단하다.
조씨는 인터넷 다음카페에 ‘설리반의 손, 헬렌캘러의 꿈(cafe.daum.net/deafblind)’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시청각 장애우들을 모았다.
이들에게 점화에 대해 알리고 점화를 가르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매주 조씨의 집에 모여 점화를 가르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마음의 봉사를 하고 있다.
구체적인 점화연구를 위해 조씨는 나사렛대학교의 ‘점자문헌정보과’의 신입생이 됐다. 시청각 장애우들을 위한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서다.
비록 김순호씨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해 김씨의 도움을 받아야하지만 같은 처지의 시청각 장애우들을 도와야 겠다는 의지는 변함이 없다.
조씨는 “점화는 시청각 장애우들만의 대화가 아니다. 일반인이 점화를 알지 못한다면 주변의 상황들을 전할 수 없는 만큼 일반인들의 보급과 인식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눈먼이가 다리가 불편한 이를 업고 강을 건넌다는 우화가 떠오른다. 이 부부야 말로 서로 의지하고 지탱해가며 힘든 강을 건너고 있었다. 한 단계 높여 다른 장애우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한없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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