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돈 경제부장 |
대형 마트의 이같은 급성장과는 달리 지역 전통 유통업계는 호된 시련기를 겪었다. 서민들 애환이 서린 재래시장이나 이들과 삶을 같이한 지역 중소 유통업체 몰락이 이를 입증해 준다. 실제로 대형마트의 출점과 동시에 대전지역에선 신한시장 등 몇몇 시장들이 간판을 내리거나 유명무실한 장터로 전락했다. 또 명절만 되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새끼줄을 쳐 놓고 점심을 먹어야만 했다는 원동의 중앙시장도 이젠 명맥만 유지하는 처지다.
지역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대형마트 한개 업체가 입점할 때 마다 재래시장 7곳과 동일한 수준의 매출을 기록하며, 1100여 상인들 생계를 위협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적정수준을 넘어선 대전지역 대형마트의 봇물 입점을 줄기차게 반대해 왔던 것이다. 대형 마트의 편리성보다도 재래시장 상인과 주변 유통업에 종사하는 지역민들의 쇄락이 대전 경제에 악영향을 줄게 뻔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쯤되자 입점을 앞둔 대형마트들은 앞다퉈 대전경제 활성화 역할과 지역사회 봉사 활동 등을 제시하며 지역민과 지방자치단체 달래기에 적극 나섰다. 지역 농축산물을 우선 매입하는 한편 일정 금액 지역사회 기부와 장학사업 등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 그 요지다.
하지만 올 국정감사에서 이같은 대형마트들의 약속은 단순히 입점을 위한 공약(空約)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우리를 씁쓸케 했다. 매장에 지역 상품 외면은 여전했고 지역 자금의 역외 유출 또한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에서 하루동안 벌어들인 수십억원 현금을 다음날 고스란히 서울 본사로 송금해 지역에서는 단 한 푼도 회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역사회 환원 부문 역시 미미하긴 마찬가지였다. 상호만 대면 바로 알 수 있는 국내 굴지 한 업체의 경우 지난해 대전에서 146억원 순이익을 올렸음에도 지역 복지사업 지원에는 순익의 0.23%인 3200만원이 고작였다. 109억의 순익을 낸 또 다른 마트 역시 1.31%인 1억4000만원 지원이 전부다. 입점당시 철썩같이 약속했던 것에 비하면 여간 낯간지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지역사회 일각에선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이렇게 다를 수 있냐며 얄팍한 기업 윤리를 지탄하는 소리가 최근 높아지고 있다.
물론 서울 본사 지침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하는 지방점 처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지역 사회 기여도에 대한 점장의 강한 의지만 있다면 결코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겠냐는게 지역민의 중론이다. 대전에서 번 돈을 대전 경제와 대전 사회에 일정 부분 환원해야한다는 당위성은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 그래서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을 기업윤리에서 첫 번째 덕목으로 꼽는 것이 아닌가.
특히 대형마트와 같은 서비스 업종은 더더욱 그렇다. 소비자의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이 없는 서비스업은 결코 영속할 수 없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이제 대형마트도 새롭게 변해야 한다. 대전에 와서 돈만 벌어가는 단순한 장사꾼 모습이 아닌 진정 지역 사회와 동고동락하며 함께 성장하는 참 기업의 모습으로 거듭나길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그 길이 바로 ‘그들만의 약속’이 아닌 진정‘모두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