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제도 폐지는 근대화의 기점으로 평가받는 개혁이었지만 입신양명을 꿈꾸던 양반 선비사회에는 청천 생벼락이었다. 2010년까지 일정 규모의 신규 증원이 필요하다고 아득바득 우길 때는 언제고 초등학생수 감소로 임용 정원을 축소한다며 뒤통수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교대생들의 심정도 그 옛적 선비들의 절망을 닮지 않았을까.
"교육부는 세 살 때부터 신용을 잃었어." "교대생은 4학년 때부터 웃음을 잃었어."
유행어 패러디처럼 정책적 실기에서 비롯된 기막힌 시행착오에 맞서 예비 초등교사인 교대생들이 교원 임용 축소 백지화를 요구하며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교대생들은 임관이 보장된 사관생도 등과 다르고 중등교사를 배출하는 사범대의 상황은 교육대보다 몇 곱절 비관적이라는 점, 너나없이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어 이기적인 열외의식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몸부림을 밥그릇 싸움이라고 돌팔매질할 수는 없다.
교대의 특수목적과 '졸업=취업'의 등식을 보증수표처럼 믿었던 그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희구하는 교대 열풍 속에서 유다른 확신을 갖고 어렵사리 입학한 학생들이다. 1970년에 575만명이던 초등학생수가 현재는 392만여명이고 2015년엔 270만명으로 예견됐었다면 첫 번째 책임도 마지막 책임도 그동안 정원 조절을 미적거린 정책 당국에 있다. 교대 반발 때문이었다고, 교사 인건비 부담을 지방정부에 떠넘긴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학급 증설을 막아버린 학급총량제 탓이라고도 말하지 말자. 첫 열매를 따는데 10년, 제대로 된 수확에 15년 걸리는 감나무 한 그루의 산수만도 못한 교원 수급 정책의 실패를 먼저 깨끗이 시인할 것. 우리 교육과정은 등급 매기기 경쟁과 우열만이 지배했으며 교육이념은 혼미에 빠지고 교육정책은 표류했다. 이 모두, 바람 따라 물결치지만 바람 때문에 갈 길을 안 바꾸는 강물 같아야 할 교육정책을 함부로 다룬 결과다. 그래서 변화 아닌 고통의 윤회만 있었던 것 아닌가.
잘못을 저지르고 거짓 참회할 때를 빗댄 서양 옛말에 '악어의 눈물' 비유가 있다. 그런 시늉이라도 나와야 할 판인데 듣기로는 "임용고시에 떨어진 적체 인원을 어떻게 책임질 거냐"는 교대생 질문에 "우리가 어떻게 책임지느냐"는 대답을 되받았다 한다. 어떡하란 말인가. 출산율 저하는 금세 어디 가고 성화에 못 이겨 정원을 늘려 수정 공고를 내는 교육청도 딱하다. 초등학교를 너무 짓고 초등교원을 과잉 배출해 예산 낭비했다며 교대 정원을 35% 감축하라는 감사원은 이런 권고를 왜 좀 일찍 하지 못했는지, 향후 5년간 초등교원을 신규 채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교육개발원의 연구 보고는 왜 철저히 묵살됐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뒤늦게 전국 11개 교육대학의 정원을 줄이고 부랴부랴 중장기 교원 수급계획을 실행하는 것과 별도로 고무줄 같은 정책 담당자의 과오는 결코 가볍지 않다. 상식이 기적이 된 이 몰상식이 정부를 뒤덮고 교육계를 짓뭉개고 급기야 교수도 교사도 교대·사대생도 준(準)공황상태로 몰아넣은 바로 그 책임 말이다. 교대가 바뀌기 전에 교육부가 바뀌어야 하며 대학 정상화를 위해 초·중등교육부터 정상화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해결의 가닥을 잡기 바란다.
총체적 위기이든 교육의 어떤 재편과정이든, 작금의 '정답 없음' 혹은 오답투성이 같은 상황에서는 물론 어려운 문제다. 역사는 노상 낡은 역사를 탄핵하고서야 새로 시작됐는데, 어쩌겠는가. 교원 수급의 전체 시스템을 교란시키지 않는 성숙함으로 수업거부, 시험거부라는 극단은 피하고 오는 19일 임용시험장에서 교대생들을 보고 싶다. 염소뿔 오래 묵힌다고 사슴뿔 되지 않는 법이다. 어려울수록 쉬운 쪽에서 실마리를 찾으라는 뜻으로 새겨도 된다. 예기치 못한 바리케이드 앞에서 겪던 과거시험 유생들의 좌절을 앞길 창창한 우리 예비교사들이 맛보지 않기를 바라고 또 청한다. 정책 부재, 정책 실패의 혐의를 저출산에 씌우지 말고 솔로몬의 지혜라도 짜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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