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비사]78.詩碑

[충청비사]78.詩碑

예술이 머물다 간 자리…

  • 승인 2006-10-26 00:00
  • 前 중도일보 주필前 중도일보 주필
거기 조그마한 驛처럼 내가 있다
성기조씨 한국 문인중 문학비 가장 많이 세워
한성기 ‘역’ 대전 첫 건립… 문학상까지 제정
고장 문인 생가.시비 찾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가을이면 누구나 갖가지 비(碑)와 만나기 마련인데 그 까닭은 추석성묘와 각종 문화제, 토속잔치에서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 비(碑)는 왜 세우며 무슨 의미를 갖는가? 간혹 목비(木碑)가 있긴 하나 碑하면 돌에 문자를 새겨놓는 게 통례다. 비석에선 ‘기록성’과 선전(사회교육)성을 갖는다.



이는 동서(東西)가 다를 바 없지만 서양에선 그것을 ‘툼스톤(Tomb stone)’이라 부른다. ‘툼’은 무덤, 납골당, 묘지를 뜻하고 ‘스톤’은 돌을 지칭하는 것으로 거기에 인물과 역사, 때론 자연경관 같은 걸 적어 놓기도 한다. 한자문화권에선 그것을 ‘碑’라 부르고 일본에선 ‘히(碑)’라 직역, 일반적으로 ‘イシブミ(石文)’로 통용되고 있다.



비의 종류는 다양하다. 예를 들면 ‘어느 왕의 순례비’라던가. ‘死六臣추모비’, ‘위령비’, ‘선정비’, ‘효자비’, ‘열녀비’, ‘승전비’, ‘하마비(下馬碑)’ 등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다. 세계에서 가장 큰 碑하면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로 이 碑는 현재 충신 ‘삼학사비’와 함께 독립기념관에 복제, 건립해 놓았다.

계룡장학회(이사장 이인구)에서 이뤄 놓은 괄목할만한 업적이라 하겠다. 이밖에도 ‘노래비’라는 게 있다. 목포 유달산엔 이난영의 노래비, 충북의 ‘박달재 노래비’, ‘추풍령노래비’ 진주의 ‘남인수노래비’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碑를 말하다 보면 문인들의 시비(詩碑)와 문학비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충남 홍성엔 ‘님의 沈默’으로 유명한 ‘한용운 詩碑’와 당진의 ‘심훈의 碑(상록수)’와 청양 목면엔 ‘윤강원 詩碑’가 서 있다. 그는 현대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지낸바 있는데 윤강원은 시인 윤충원의 동생이다.

대구엔 ‘이상화 詩碑’, 충북 옥천에는 ‘정지용 詩碑’가 있고 대전에는 ‘정훈 詩碑’가 머들령에, 보문산엔 ‘박용래 詩碑’ 시민회관(연정국악문화회관) 앞뜰엔 ‘한성기 詩碑’가 있는데 이들 3인은 문학상제도까지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碑(문학비)에 대해선 늘 뒷말이 따랐고 지난 80년대 초 김해성이 영산강 하류에 詩碑를 세우자 볼멘소리들이 뒤따랐다.

생자의 碑가 웬말이냐며 수군댔지만 오늘에 와서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젠 현역들도 마을입구와 경관지구, 아파트단지, 공원 등에 碑를 세워 시민정서에 기여하는 추세다. ‘風濤’, ‘태합 히데요시(秀吉)’ 등의 소설로 유명한 일본의 ‘이노우에(井上靖)’도 생전에 고향 ‘누마즈(沼津)’역 광장에 文學碑를 세운 바 있다.

그의 글 속에서 몇 구절을 따내어 ‘아무리 원자탄 위력이 크다 해도 사랑의 힘에 우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필자는 그곳을 70년대에 이미 몇 차례 거친 일이 일이 있는데 김해성이 이를 모방한 것일까? 하고 가끔 생각해본다. 요즘은 생존문인들의 비가 도처에 서 있다는 소식인데 한국문인 중 자신의 詩碑를 가장 많이 세운 건 누구일까?

그는 국제PEN클럽 회장을 지낸 성기조다. 이를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가지만 어떻든 그의 정열은 알아줄만 하다. 이와는 달리 이문구(李文求)는 유언에서 ‘내가 죽거든 문학관이나 詩碑, 문학상 따위는 절대로 거론하지 말라.’고 했다는 게 아닌가. 60년대 그의 소설 흑맥(깜부기)을 읽은 일이 있지만 그는 평생 투사적인 자세로 살다간 작가였다. 여기서 매명(賣名)이 옳으냐, 겸양하는 게 미덕이냐를 놓고 생각해본다.

대전에 제일 먼저 세워진 ‘한성기詩碑’는 크나큰 자연석에 그의 대표작 역(驛)이라는 시를 새겨놓았다. 필자가 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 부회장 한상수(대전대 교수), 안명호(전 대전예고교장), 사무국장 오완영(현 대전펜클럽회장)과 협의, 이를 세웠다. 그때는 시대상황(계엄령)이 모금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필자 혼자 뛰어다니며 제작비를 마련했다.

요즘은 詩碑라면 시민들이 무표정하지만 당시 ‘한성기詩碑’는 제법 눈을 끌었다. 남녀노소, 학생, 주부할 것 없이 이 碑 앞에서 ‘역(驛)’을 애송하고 있었으니….

요즘은 이 詩碑를 관리하는 이가 없어 먼지와 탑새기를 뒤집어 쓰고 앉아 폐석처럼 보이지만 이를 세우는데 돌 값과 운반, 각자비(刻字費) 등 적지 않게 먹혔다. 또, 서예가 조중국(현 대전예총회장)의 글씨가 이를 더욱 빛냈다. 이 碑를 세울 때도 장소를 얻는데 보통 애를 먹은 게 아니었다. 계엄령하인데다 처음 있는 일이 돼서 시청 실무진은 물론 시장까지도 고개를 내저었다.



그 무렵 4대 화가의 한 사람 ‘정향(靜香)기념비’를 보문산 입구에 세우려고 5평 남짓의 땅을 얻으려다 불발에 그친 선례가 있어 더욱 힘이 들었다. 당시 김용성 시장은 내 힘으론 어려우니 시정자문위원단 양해를 얻어내면 허가 하겠다는 바람에 40여명의 자문위원을 소집, 설득에 나섰지만 역시 통하질 않았다. 협상(?)과 휴식을 반복하며 필자는 장장 3시간 이상을 떠들어댄 끝에 가까스로 동의를 얻어 詩碑를 세웠다.

이어 제막식을 갖고 필자는 ‘한성기 文學賞’을 제정 제3회까지 밀고나갔다. 제1회 수상자는 성기조(전 한국PEN클럽회장), 제2회는 오완영(전 충남도교위 학무국장), 제3회 손기섭(충남대의과대학장)이었다. 상금은 100만원에 상패, 그리고 조촐한 파티까지 벌였다.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인가. 들려오는 건 모두 불쾌한 소리뿐이었다.

“저 사람은 한성기 제자도 아닌데 왜 저리 열을 내는가?” 심지어 유족측도 “왜 우리 아버지를 업고 다니느냐?”며 ‘고맙다’는 인사는 커녕 볼멘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만원 한 장 보태준 사람이 없었지만 시비건립과 3회에 걸쳐 시상을 하는데도…. 여기서 필자는 손을 뗐다. 요즘은 ‘백지동인’에서 시상을 한다던가.

詩碑는 대전에도 많이 서 있다. 생존한 문인 것으로는 안명호詩碑가 유성에, 보문산 야외음악당 입구엔 ‘비둘기’라는 ‘최원규詩碑’, 文學碑로는 유일하게 권선근 것이 둔산 ‘샘머리’공원에 세워놓았다. 소설을 써온 권선근은 과작을 한 탓에 작품집은 없으나 60년대 초부터 ‘예총회장’과 ‘문협회장’을 비롯 대학 강단에 섰던 공로로 좋은 장소에 세웠다.

이는 최송석이 대전문협회장 시절 건립한 것이다. 그리고 ‘정훈詩碑’는 금산 입구 ‘머들령’에 ‘박용래詩碑’는 보문산 사정공원에 ‘이덕영詩碑’는 신탄진에 서 있다. 이는 박명용이 회장 때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또 ‘박희선詩碑’는 계룡산 입구에, 김대현 것은 대청호 경관 좋은 곳에, ‘김용재(대전대 대학원장)’가 세웠고 ‘김관식詩碑’는 계룡산에 ‘금강시인’, ‘신동협詩碑’는 부여에 조남익이 세웠다.

또, ‘신정식詩碑’는 보문산 사정공원에 있어 외롭지 않다. 하지만 詩碑에 있어 유명, 무명을 불문, 모두를 세우다보니 신선미가 없다는 여론도 없지 않았다. 말하자면 공동묘지의 비석과 뭐가 다르냐는 뜻이다. 하지만 무명일지라도 평생 그것에 매달려왔다면 작품의 우열(優劣)을 떠나 碑하나쯤 세워주는 게 도리요, 인정이라는 것이다.

어떻든 개성이 강한 문인집단이다 보니 정치판 이상으로 말이 많고 시끄러운 게 사실이다. 詩碑의 조각됨됨이를 평하고 음, 양각, 획, 색상이 어떠니 꼬집기도 하고 비신(碑身)이 너무 길다느니 받침대와 균형이 안 맞고 위치선정과 원근법 시비 등 다양한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석재(石材)가 어떻고 방향이 어떠니 그야말로 군맹상평(群盲象評)식 의견들이 무성했다.

필자가 세워 놓은 ‘한성기詩碑’를 놓고도 말이 많았다. ‘驛’이라는 詩라면 당연히 대전역이나 서대전역 광장에 세울 일이지 하필이면 시민회관이냐는 항변도 있었다. 그런 논리라면 ‘설악산詩’는 강원도에 ‘바다’라는 詩는 해상에 세우란 말인가. 만약 ‘하늘’이라는 시라 할 때 성층권(공중)에 세우라는 말이냐고 되받아 친 일도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詩碑를 세운 역대 회장들의 노고에 우리는 찬사를 보내고자 한다.



詩碑를 세우고 문인을 기리는 건 아름다운 일로 그것이 대가가 아닌 무명일지라도 일평생 그것에 매달렸다면 작품의 우열을 따질 계제가 아니며 고인의 경우는 더욱 그것이 절실하다. 세상에는 별에별 직종이 있기 마련이지만 벼슬도 아니고 그렇다고 먹고사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문학, 평생 그것에 매달려왔다면 이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대가 아닌 무명이라 하더라도 그를 추모하고 보듬는 건 도리요, 예의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민초에게도 학생부군(學生府君)으로 시작, 이름 석자를 기록해 놓는 세상인데 무명이라 해서 그냥 지나칠 일은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대전에도 詩碑(文學碑)가 도처에 서 있지만 대부분 사후관리가 허술한 듯해서 안타깝다.

시민회관 앞뜰에 세워 놓은 ‘한성기詩碑’도 먼지를 뒤집어쓰고 앉아 보기 민망할 때가 있고 보문산 야외음악당입구 ‘최원규詩碑’도 비둘기배설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걸 본 사람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비둘기’라는 詩碑 바로 머리위의 비둘기 둥지에서 연신 배설물을 쏟아내어 보기 민방하다. 그러니 우리는 詩碑를 세우고 박수치는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말고 지키고 가꾸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문인단체에선 가끔 ‘문학기행’이라는 명목으로 저명한 문인들의 고향을 찾는 행사를 갖지만 이에 앞서 이 고장 출신 문인의 생가나 詩碑를 찾는 일에도 인색해서는 안 된 줄로 안다. 단체탐방이 어렵다면 서클이나 ‘동인’간에 생시에 교분을 가졌던 문인만이라도 가끔 찾아가 잡초를 뽑아주고 휴지를 줍는 아량 쯤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 시의 수준 여하를 따지고 유아독존(?)하는 식의 자태는 이제 접을 때라 생각한다.
▲ 대전시민회관(연정국악문화회관) 앞 뜰에 서 있는 ‘한성기 詩碑’는 대전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것으로 크나큰 자연석에 그의 대표작 역(驛)을 각인해 놓았다
▲ 대전시민회관(연정국악문화회관) 앞 뜰에 서 있는 ‘한성기 詩碑’는 대전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것으로 크나큰 자연석에 그의 대표작 역(驛)을 각인해 놓았다
▲ 홍성에 있는 만해 한용운 시비
▲ 홍성에 있는 만해 한용운 시비
▲ 충북 옥천의 지용 시비
▲ 충북 옥천의 지용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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