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도 유세
다 아는 얘기지만, 유세(遊說)란 무엇인가. 돌아다니면서 자기나 정당의 의견 따위를 선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유세는 감언이설로 달래어 꾄다는 유세(誘說)와 닮았고, 자랑삼아 세도를 부린다는 유세(有勢)하고도 닮았다. 이 유세 부리는 현장에서 한마디만 따오기로 한다.
이번 선거의 주제는 단연 '음식'이었다. 어느 당 대표는 자기 당(黨)은 웰빙식품으로, 이 당은 탈○○식품(특정지역 지칭), 저 당은 계속 먹어 질린 음식 등으로 비유했다. 다른 쪽 진영에서도 저마다 음식과 상품에 비유하면서 현란한 말잔치를 벌여나갔다
# 먹는 얘기
마시고 먹는 일은 덕이라는 말, 즉 음화식덕(飮和食德)이라는 말에 공감하고 싶어지니 이게 슬슬 나이를 먹어가는 징조인가 보다. 음식의 참 맛을 아는 사람이 적음을 지적한 공자님, 아니아니 맛있는 음식과 예쁜 음식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까지 설파하신 맹자님의 현철(賢哲)함이시여!
내친 김에 내 방식대로 먹는 얘기 좀 할까 한다.
중부 아프리카의 스와힐리말로 '사랑한다'는 말은 '먹는다'는 말뜻과 같다.
기가 막히게도,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나는 당신을 먹는다'가 된다. 이 대목에서 교미 후 암컷이 수컷을 냉큼 잡아먹는 사마귀나 거미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희한하고 슬픈 이 미물들에게 대저 사랑이란 죽음이라는 참담한 대가를 수반하는 장엄한 의식이 왜 아니겠는가.
한데 그 스와힐리말은 '먹는다'가 '성교하다'의 은어로도 통하는 우리 '언더' 계열의 사정을 헤아려봐도 어쨌든지 묘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먹다'에는 특히 한국말에서 실제 입으로 무엇을 먹는다는 중심뜻 말고도 아주 다양한 변두리뜻을 지니고 있다. 멋모르는 외국인들은 '식생활'이라는 낱말조차 아주 의아하게 여길 만큼.
기억을 더듬어보자. 왕년의 드날리던 챔피언 홍수환이 상대를 누이고 세계권투의 왕좌에 오른 직후 그의 어머니와 나눈 국제전화 첫마디가 무엇이었던가.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이 말이었다. 물론 이때의 '먹는다'는 상을 타거나 어떤 자격을 '차지했다'는 뜻일 게다.
우리 여성들이, 어머니들이 화장품이 얼굴에 '발리는' 상태를 화장이 잘 먹느니 안 먹느니 푸념하는 소리를 종종 듣게 된다. 담배를 피우거나 술 마시는 것도 능히 '먹는다'는 말로
'먹는다'에는 또 겁을 먹다(느끼다), 욕을 먹다(듣다), 골을 먹다(득점하다) 마음먹다(결심하다)와 같이 여러 뜻이 있다. 톱날이 산득산득 잘 '들면' 톱날이 잘 '먹는' 것이고 맷돌이 콩을 잘 '갈아도' 잘 '먹는' 것이다. 돈을 '먹는다' 함은 남의 돈을 제 것으로 '삼는다'는 말뜻, 만약 농사짓는 논배미가 쌀 석 섬을 '먹는다'고 한다면 그만큼의 '수확을 한다'는 얘기일 거고.
그뿐인가. 아침에 밥 먹고 회사에서 점심 얻어먹고 상사한테 욕먹고 퇴근해서 술 먹고 집에 가서 마누라한테 욕먹고(필자 얘기가 절대 아님), 인터넷에서 댓글로 욕먹고……. 쉽게 말해 우리들의 일상이 먹는 것의 연속이다. 이걸 먹고살기 힘든 시절의 유산이라 해도 틀리지는 않으리라.
밥이 보약이었고 밥이 최상이었으니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 못 먹는 밥
다시 말하지만 지구 땅덩이 어느 곳에서 우리 민족처럼 '식(食)'을 강조한 유례가 있을 것인가. '밥 먹었느냐'는 말이 아직도 인사의 단골 메뉴로 밥먹듯 행해지고, 같이 사는 사람들은 식객이고 식구이지 않은가.
이 정도이고 보니 밥에도 서열이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도 보인다.
임금의 '수라', 양반이나 웃어른의 '진지', 하인과 종이 먹는 '입시', 제사 때 영혼이 와서 먹는 '메' 등등, 그리고 진밥, 된밥, 선밥(충분히 익지 않은 밥) 등등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경제사정이 좀 나아진 요즘에야 그릇 위까지 수북히 높이 담은 '감투밥' 먹는 사람은 줄었지만 세끼 식사 외에도 밤참도 먹고 참참이 곁두리도 먹는 등 군밥을 많이도 먹는다.
이렇게 먹는 밥이 많은 만큼 쉰밥, 서른밥, 눈칫밥 등 못 먹는 밥도 많다.
옛말에 왕은 백성으로 하늘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더니, 시방도 학자는 밥줄 떨어질까 전전긍긍하긴 매일반이고 얼어죽어도 짚불은 안 쬔다는 고고한 양반 자존심도 음식 앞에서는 봄눈 녹듯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었을 만큼 중요한 식습관. 오죽하면 먹는 죄는 무죄라고 했고 거지의 동냥질은 하늘이 시켜서 하는 짓이라고 인식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먹는 개도 아니 때리고 심지어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이라도 좋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먹지 않는 종, 투기 없는 아내'를 희망사항으로 꿈꾸는 이중성을 끝내 버리지 못한 우리들이 아니던가. 일껏 애쓴 사람은 뒷전으로 차이고 밀리는 것처럼 뵈는 세상이라, 자고 이래로 먹기는 파발이 먹고 뛰기는 역마가 뛰는 부조리의 악순환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요새 보니 소위 나랏밥 먹는다는 사람들이, 평화 깨지면 밥통도 산통도 다 깨진다며 북한을 다녀온 건 그렇다 치고, 춤까지 추고 와서 밥맛 없는 소리로 변명해도 이를 고깝게 보는 국민들의 귀에는 뭐라 들릴까? 개가 콩엿 사먹고 버드나무에 올라간다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민족끼리 밥이 되어준다는 정신이 고매한 줄 누가 모르나. 그래도 그 핵이 만에 하나 한국이 아닌 미국을 겨냥했건, 설사 중국이나 일본을 겨냥했더라도, 핵실험을 무슨 방귀 한번 뀐 정도로 생각한다면 이건 대단한 잘못이다.
쓰다 보니 정치와 음식은 전혀 별개의 문제가 아닌 듯도 하다.
그래도 이것만을 알아둬야 한다. 싫으면 그냥 귓등으로 흘려들어도 좋다. 날아다니는 잠자리가 뛰는 개구리에게 잡아먹히고, 뛰는 개구리를 기는 뱀이 잡아먹는다. 그러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만 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도 숙지하면 인생살이에 유리하리라는 것, 먹기 위해서 살든 살기 위해서 먹든, 먹는 것은 그저 음식만이 아닌 사람의 생명을 상징한다는 것. 그리하여 먹는 일이 아직도 화두가 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시대착오적이라고 해야 할지, 이걸 문화인류학적으로 구명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음을 밝혀둔다.
정말 중요한 가치를 잊고 강아지 약과(藥果) 먹듯 사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보면서 글을 썼다는 것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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