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선호 권산부인과 원장 |
푸른 나뭇잎은 가을이 되면 우주의 빛을 끌어다가 현란한 색의 마술을 펼쳐 보여줍니다. 바로 단풍이지요. 그러나 올핸 단풍으로 물들기도 전에 아쉬운 눈물을 흘리듯 뚝뚝 떨어져 발에 밟히고 있었습니다. 대신 가을 산야에는 색색의 옷을 입고 아름다운 단풍을 찾아 헤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물결이 더 울긋불긋하였습니다.
그러나 숲속이나 길섶의 수풀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에서는 쨍쨍 내리쬐는 햇살을 피할 길이 없어서 더더욱 가뭄으로 고생을 하였을 텐 데도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이 튼실한 열매나 씨앗을 잔뜩 달고 있는 수목들도 많았습니다.
솜나물, 고들빼기, 원추리, 처녀치마, 박주가리, 둥굴레, 며느리배꼽, 그리고 도깨비바늘 등이 솜털이나 뾰쪽한 씨앗을 달고 있는 모습들이 경이롭습니다. 자연의 야생들이 겨울의 살벌한 눈바람과 추위를 이기고 난 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다음 열매나 씨앗을 만드는 일들은 자기 종족을 유지하고 번식시키기 위함입니다.
종(種)을 번식시키기 위한 기후나 영양 조건들이 나쁠수록 더 많은 씨앗과 열매를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니 가을 가뭄으로 풀이 죽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튼튼한 씨앗을 많이 달고 있는 저들의 숭고한 삶이 이해가 되는군요.
우리 인간들의 염색체 어느 구석에도 종족의 유지와 번식을 위한 원초적인 본능이 숨어 있을 테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는 출산율 저하의 문제는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산부인과 환자들을 만나면서 둘째나 셋째 아이의 출산 계획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많은데, 부정적 반응이 많습니다.
인간의 본능이면서, 이제는 사회적으로도 요청되고 있는 ‘2세 출산’이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전문가들이 출산율 저하에 따른 후유증을 심각하게 경고를 하고 있지만 당장은 개선될 여지도 없어 보이고 당분간은 산부인과의 분만실 폐쇄라는 좋지 않은 소식도 계속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이는 단지 산부인과가 입을 피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닐 듯싶고 사회나 국가, 더 나아가서는 인류 운명의 문제로 도미노처럼 확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일수록 종족 번식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자연 생태계의 현상을 보면서 한껏 우수하다는 우리 인간들의 사고와 벌이고 있는 행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며 앞으로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건강한 아이를 출산을 하고 아이를 품에 안고 기뻐하며 병원 문을 나서는 엄마, 아빠의 모습들을 자주 볼 날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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