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철중 대전예술의 전당 후원회장 |
묵은 곳 아파(APA)는 숙박비가 실비인 비즈니스 호텔. 아기자기 잘 꾸민 방은 작은 대로 두 사람 쓰기에 충분하고, 아래층 대욕장(大浴場)은 일본이 자랑하는 3대 온천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놀라운 것은 그 규모. 객실이 무려 900개란다. 벳푸(別府)의 스기노이 호텔도 비슷했던 기억이 난다. 대전의 자랑 유성도 수질 좋은 온천 덕분에 관광특구가 되었다. 그러나 인구 150만의 광역시를 통 털어 무궁화 다섯쯤 되는 객실이 얼마나 되는가?
2년여만에 다시 문을 연 리베라가 174실, 유성호텔이 190실이다. 그밖에 S, H, A 등 4성급 호텔은 시설에 비하여 능숙한 외국어인력이 달려, 외국 VIP들이 대거 찾아올까봐 오히려 겁이 날만큼 국제도시로 발돋움하기에 대전의 숙박 인프라는 아직도 열악하다.
2004년 10월18일. 세계 3대 오케스트라의 하나인 뉴욕 필 공연을 그것도 다름 아닌 대전에서 볼 수 있었다. 군살 없는 몸에 꼭 들어맞는 정장처럼 불필요한 동작이 전혀 없고, 돌아설 때는 힘차게 꺾어지는 74세 로린 마젤의 농익은 지휘.
리스트 제 2악장 끝 부분에 머리카락이 하얀 바이올린 수석, 카덴자 같은 짧은 독주의 완벽함. 단원 하나 하나가 연령적으로도 성숙한 세계적인 대가로서, 악기 좋고 호흡도 잘 맞아 관객이 처음부터 몰입할 수 있는 완전히 소화된 꿈같은 연주였다. 우리의 기대주 손열음과의 협연 또한 기대 이상이었고, 은방울이 구르는 듯한 손 양의 앙코르곡은 리스트가 편곡한 라 캄파넬라(작은 鐘)로 기억한다.
공연이 끝난 후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마침 리베라는 4개월째 파업중이었고, 객실 80여 개의 대덕 롯데는 이미 폐업상태였다. 일행 120여명이 두 호텔로 분산된 데다가 한 곳은 뒤늦게 바뀌었으니 혼잡과 4성호텔의 언어소통 문제 등, 불편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시차에 더하여 장거리 버스여행과 긴장된 연주 끝에 나이 지긋한 단원들의 피로회복과 안락한 잠자리 마련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누구나 당일에 서울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목숨보다 아끼는 고가의 악기를 챙겨 경부고속도로의 혼잡을 뚫고 겨우 호텔에 도착하면 어느새 새벽 2시. 힘든 것은 고사하고 선진국식 계산, 즉 노동규정 문제가 발생한다.
연장 근무의 추가경비에 객실료 차액도 엄청나다. 지방도시로서는 지역에 떨어질 숙박 관련 수입을 빼앗기는 것만도 억울한데, 불필요한 추가경비지출이라는 이중손실을 감수해야 하니 늘어나는 이동경비를 최대한 줄이려고 협상에 매달린다.
주최측의 끈질긴 노력과 설득, 그리고 공연 팀의 양보와 희생, 이것은 피차에 못할 짓이요, 국가적으로도 득 될 것이 없다. 지역 관광 인프라의 개선은 국가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획기적으로 발상을 전환,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풀어야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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