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동춘당에 대해 근래 새로 알게 된 사실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동춘당 앞에 있는 안내문에는 동춘(同春.송준길의 호) 선생의 부친 송이창 선생이 (現 동춘당 건물의 위치로) 이전(건축)하였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의혹이 대두되고 있다. 동춘당 건물의 본래 위치는 현 건물로부터 서남쪽으로 약 35m 떨어져 있는 곳이었으며,지금부터 40~50년 전에 현 위치로 옮겼다는 것이다.
문화재(文化財)는 원형 보존이 원칙이다. 문화재의 가치가 바로 그 건물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법으로도 그렇게 규정돼 있다. 동춘당이 정말 본래 건물을 헐어 이전하였다면 보물 209라는 문화재로서의 지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전 건축’은 사실인 듯 보인다. 동춘당을 이전할 당시 그 건축공사에 참여했었다는 사람이 아직 동춘당 인근에 살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동춘당은 본래 하얀 석회 벽이었다. 동춘당을 이전하면서 동국대학 교수라는 분이 고집하여 흙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독일의 한 대학 총장 일행이 동춘당을 답사하였는데 그가 벽의 색깔에 대해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그는 “한국의 기와집은 모두 흰 벽인데 왜 여기(동춘당)만 흙벽이냐”고 물었다. 그때 필자는 제대로 답을 못했었다. 동춘당의 벽이 흰 석회(石灰) 벽이 아니라 황토빛 흙벽으로 된 것은 동춘당을 새로 지어 옮기면서 모래흙으로 벽을 칠한 때문임을 나중에 알았다.
우리 민족의 상징은 흰색이다. 흰 옷, 흰 이불과 함께 기와집의 벽도 흰 색이어야 맞는다. 그런데 동춘당은 목조 기와 건축이면서도 흙벽으로 되어 있으니 독일 총장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고, 알고 보니 정말 동춘당 벽은 본래 벽이 아니었다.
또 우암(尤庵) 송시열이 쓴 것으로 알려진 ‘同春堂(동춘당)’ 현판(懸板)도 사실은 모조품으로 의심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필자가 한번은 송(宋)씨 문중 사람에게 그 현판이 진짜인지를 물었더니 그는 “진짜는 금고 속에 보관해 놓고 있다”고 했었다. “현판을 금고속에 넣다니…” 말이 안 되는 대답이었다. 동춘당 현판은 본래 온돌방 쪽 추녀 밑에 걸려 있었으나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러면 이제껏 관련 기관이나 전문가들도 모두 가짜 동춘당을 놓고 해설하고 언급하였다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다. 대청마루 위로는 습기에 젖은 흙이 떨어져 매일 같이 해설사들이 쓸어내고 닦아내고 있다.
또 서까래는 구멍이 뚫려 썩고 있다. 처마와 벽 사이에는 틈이 벌어져 흙이 조금씩 계속하여 떨어져 나가고 있다. 추녀에는 참새가 집을 삼아 알을 까고, 또 몇 년 전인가는 문화재 보수 공사로는 보기 힘든 보수공사가 진행되었었다.
동춘당 전면의 일각문 안쪽 좌측 기둥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고, 기단석과 댓돌은 어디서 주워온 막돌을 늘어놓은 듯이 쌓여 있다. 댓돌은 다른 용도로 쓰던 것을 재가공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 동춘당의 문제점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동춘당의 문제를 공개하는 것은 동춘당 지킴이로 활동해온 필자로서는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지만 사실을 숨길 수는 없다. 동춘당은 대전에서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건축 문화재다. 그런 문화재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동춘당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문화재청은 물론, 대전시청과 대덕구청의 문화재 담당자는 이러한 내용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동춘당이 처한 현 상태와 관련된 의혹을 철저하게 파악하여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동춘당은 정말 위기에 처할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