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갈등에 멍든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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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갈등에 멍든 사랑이

<교육단상>

  • 승인 2006-10-17 17:42
  • 김나영  대전서부초 교사김나영 대전서부초 교사
몇 년 전의 일이다. 1학년을 담임할 때, 깔끔하고 예의 바르며 영특한 임사랑(가명)이라는 사내아이가 있었다.
매주 월요일 애국조회가 진행되는 중 국기에 대한 경례가 시작됐다.

반주 와 함께 맹세문이 우렁차게 울려 퍼지며 모든 아이들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경례를 하고 있는데, 유독 사랑이만은 오른손을 배꼽 부위에 올렸다가 슬그머니 내렸다.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다시 오른손을 배꼽 부위에 올렸다가는 슬그머니 내렸다. 나는 조용히 사랑이 곁으로 다가가서 “사랑아, 너 지금 배 아프니?” 하고 물었더니, “아니예요” 하면서 태연해했다. “그럼 왜 아랫배를 문지르고 있었니?”라고 물으니 대꾸도 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일주일 후, 다시 조회 시간이 돌아왔다. 국기에 대한 경례가 시작됐는데 사랑이는 전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다가가 “사랑아, 너 또 배가 아프니?” 하고 물었더니, 사랑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날 종례를 마치고 사랑이를 불러 조용히 물었다. “사랑아, 국기에 대한 경례만 하면 왜 아랫배를 문지르곤 하니?”사랑이는 한참동안 말이 없이 고개만 떨구었다.

그랬더니 한참 후 사랑이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집에서 엄마가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절을 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국기에 대해서도 경례를 하면 안 된다고 하셨고요. 그런데 선생님은 국기에 대하여 바른 자세로 경례해야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우리 반 친구들도 모두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하고 있는데 저만 하지 않으려니 선생님께 죄송하고 친구들한테도 창피해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사랑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동안 고통스러웠던 아픔이 한꺼번에 밀려왔는가 보다. 나는 사랑이를 꼭 껴안아 주었다. “사랑아, 괜찮아. 지금부터는 아무 걱정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사랑이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국가와 종교 간의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와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아이들이 사랑이가 겪은 고통을 그대로 겪게 될 것이 아닌가?

요즘 일본에서도 학교에서 학생들이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학칙에 의해 처벌한 것을 법원에서는 무죄처리를 한 사례가 보도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군복무를 거부하는 특정 종교와의 갈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치관은 당연히 변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당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신속하고도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일본과 같이 학생들을 법정에 세워 마음에 상처와 필요 없는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 줬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을 밝게 자라게 하고 선생님들 또한 이러한 문제로 교육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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