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경선 맑은마음 정신과 원장 |
더구나 단면을 보고 배려를 이야기하는 것이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지나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요즘의 관심이 그런 탓인지 해외여행 중에 보았던 그들의 상대에 대한 배려가 각별히 기억됩니다.
한번은 둘이 옆으로 나란히 걸으면 조금 남을 법한 좁은 복도를 지날 일이 있었습니다. 앞서 가는 중년 남자 두 분이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 중인지 그 분위기에 취해 느긋하게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뒤에 있는 젊은 친구는 그 뒤를 따르던 제게 씽긋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 하고는 그 긴 복도를 마냥 천천히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따라오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꽤나 미안한 표정으로 실례했다는 말을 하면서 길을 내 주고 또 그 젊은 친구는 오히려 이야기를 방해해서 미안하다며 몇 번을 사양하더니 조심스럽게 앞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다소간 불쾌한 표정마저 지으며 앞서 가는 사람을 휙 지나쳐 가는 것을 흔히 보아온 저로서는 참으로 잊기 어려운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그네들은 계단이나 복도에서 앞선 이들을 지나쳐 가거나 혹은 살짝 옷깃이라도 닿을라치면 반드시 실례한다는 표현을 잊지 않더군요.
한때 참으로 교만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목소리의 크기가 자신감과 비례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함께 있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제 생각이 합리적이니 따라 오는 것이 제일 낫다고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의원을 개원하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던 때였습니다. 부족한 것도 별반 없었지만 또 설사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먹고 잠시의 시간만 투자하면 바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개원 5년 차가 지날 무렵, 따분한 일상의 반복에 지칠 즈음, 새로운 일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크고 작은 시련이 현실이 되면서 초등학교 때 영세를 받고는 드문드문 필요할 때만 성당을 찾던 제게 하느님께서 인내의 한계를 느끼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고생이야 제 교만에 대한 당연한 죄 값이지만 가족들이 겪는 고통이 안쓰러웠습니다. 특히 큰 딸 애의 고통은 말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 된 인생 공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듯 보입니다. 잠시라도 교만해질라치면 여지없이 일침을 놓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배려를 떠올려야 했습니다. 사실, 매 순간 세월은 제게 엄청난 선물을 거저 주었지만 제게는 일침만 보였던 것이 맞을 것입니다.
더구나 남들에 대한 배려가 제 삶의 안락을 위한 담보인 듯 생각되더군요. 세상의 가치들, 예를 들면 여유 있는 삶이나 명망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이것은 교만의 감추어진 다른 모습이며 어쩌면 더 큰 교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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