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태근 소설가 |
이해 당사국인 한국으로서는 그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동안 정치적인 차원을 넘어 순수한 민간차원에서 도움을 줬던 한국민이 갖는 허탈감은 충격을 넘어 경악에 가깝다. 한국민이 갖는 북한에 대한 배신감은 당연하다. 정부가 그동안 IMF를 맞아 나라살림이 어려운 가운데도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을 지속해온 것은 한민족 공동체로서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민족의 운명을 백척간두의 벼랑 끝에 몰아세우고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 작금의 사태에 대한 책임과 대책을 놓고 여야의 정치권이 연일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그 책임이 미국 부시 대통령의 대북강경책에 있다는 주장과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햇볕정책으로 일관한 정부의 정책 실패에 원인이 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 원인의 당위성 여부에 앞서 정치권의 공방을 바라보는 국민은 답답하기만 하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의 모색보다, 책임 떠넘기기와 정치적인 기세 싸움의 인상으로 더 짙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책임 떠넘기기식의 설전이 아니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여야의 지도자들이 그동안 지도자로서의 덕목에 충실하면서 국사에 임했는지 겸허하게 자성하고,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인가. 지도자의 기본적인 덕목은 신(信), 의(義), 혜(慧)이다. 믿음의 신(信)은 인(人)변에 말씀 언(言)이 의미하는 바대로, 지도자는 구성원들에게 말로 약속한 것을 어떠한 경우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야 믿음이 생긴다. 또한 지도자는 약속을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구성원이 따르고 결속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과연 우리의 지도자들은 국민에게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지키려고 노력하였는가. 정치적 야욕을 채우기에만 급급하여 식언을 밥 먹듯이 하지는 않았는가.
의로울 의(義)는 희생의 제물로 쓰는 양(羊) 밑에 나를 뜻하는 아(我)가 의미하는 대로 의로움을 위해 내가 먼저 희생의 제물이 되려고 할 때 의를 이룰 수 있고, 구성원들이 의로움을 위해 기꺼이 동참한다. 아홉 명의 의인을 찾아 나서기에 앞서 내가 먼저 필요한 한 사람의 의인이 되어 주어야 한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그동안 나라의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짐을 먼저 지려고 하기보다는 그 책임을 상대방에게 떠넘기고, 저 홀로 의인인 체 국민을 기망하지는 않았는가.
지혜로울 혜(慧)는 싸리비로 쓸 혜(彗) 밑에 마음 심(心)자가 의미하는 대로, 지도자는 사심이 없어야 한다. 마음의 욕심을 싸리비로 말끔히 쓸어버리고 청정심으로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 그렇게 앞을 내다볼 때만이 구성원들을 이끌고 나갈 지혜가 생긴다.
우리는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은닉했다가 발각되어, 국가의 추징을 받고도 뻔뻔스런 변명을 하면서, 국민의 혈세를 착복하는 부끄러운 대통령을 여러 명 두었다.
지금 국가의 당면한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도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여야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겸허한 자성을 촉구하면서, 진실로 국가와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최선의 행동으로 국사에 임해줄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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