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 때부터 무슨 세계화를 한다며 영어를 배우라고 다그치기 시작한 것이 10년을 지나면서 이제는 아주 우리 말글살이(언어생활)에 영어가 안방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 아닌가싶게 깊게 들어앉았다. 젖먹이에서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영어 열풍이 불어닥쳐 주부들은 사교육비 마련하느라 몸까지 내던지는 실정이고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쯤이면 어학연수 한다며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마구 나가 기러기 아빠가 즐비하다.
학교는 원어민 교사를 모시느라 정신없고 지자체들은 영어마을인가 하는 것을 만드느라 혈세를 쏟아붓는다. (경기도는 두 곳의 영어마을 운영비 적자 220억 원을 해마다 떠 안고 있다) 그 뿐인가, 정부나 공공기관, 언론계, 거리의 간판, 모두가 영어 하나라도 더 쓰려고 안간힘이고 제주도는 아예 영어를 공용어로 하지 않았는가.
1945년 광복 이후 우리나라에 영어가 들어오면서 얼마나 파고들었는지 시골에서 농사짓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한 상자, 두 상자가 아니라 한 박스, 두 박스를 쓰고있으며 이제 말을 배우는 아이들도 물잔이 아닌 물컵으로 배우고 있으며 곱고 부드러운 어감을 가진 열쇠는 어디로 가고 쇳소리나는 키가 자리를 차지하였다.
문화라는 것이 물과 같아서 선진문화가 후진문화에 스며드는 걸 막을수는 없다. 일찍이 우리는 담배(포르투칼) 송골매, 조랑말(몽골) 구두, 가마니(일본) 사둔, 메주(만주) 택시, 버스(영국) 따위 외국말글을 외래어로 받아들여 써왔다. 그러나 이건 당시 우리 문화 속에 없는 것이어서 외래어로 수용한 것이지 우리말글이 있는 것을 밀어내고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163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중국을 다스린 청나라를 알고있다. 만주족 누르하치가 명나라를 쫓아내고 세운 청나라는 국권을 쥐고부터 한(漢)족의 발달한 문화와 말글에 젖어 270여 년 동안 한족의 말글살이에 동화되면서 만주족 스스로의 말글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아 겨레마저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중국 헤이룽장성의 한 만주족 젊은이가 제 겨레의 말글을 되살리기 위해 피땀 흘리고 있으나 몇 안 되는 만주족들의 외면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한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세계 미래학회, 미국 롱나우재단 그리고 스페인의 노벨상 수상작가들이 예측한 것을 보면 세계 6000여가지 언어가운데 21세기에 없어질 언어가 90%쯤 되고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아랍어 정도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한다.
또 유네스코는 세계 사멸위기지도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3000여종이 없어질 것이라고 했으며 롱나우재단은 1000년 뒤 사람들이 소멸된 언어를 복원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사멸예상언어 1000여종을 디스켓에 수록해 보관했는데 수록언어 가운데는 우리말글도 끼어있다.
말글은 겨레의 얼이고 겨레 그 자체이다. 좀더 낫게 살겠다고 4800만 국민모두가 영어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꼭 영어를 익혀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은 영어에 정진하고 그냥 보통 우리 같은 사람은 우리 말글을 차분하게 익히고 아름다운 말 정확한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정부에서부터 젖먹이까지 영어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우리도 만주족 같은 꼴을 겪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에서부터 우리 백성들까지 모두 한글날을 맞아 차분히 한번 생각해 보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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