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 고향은 한바탕 수다가 벌어지는 곳이다. 고향은 그곳을 지키는 터줏대감들이 있고 외지에서 생활하다 명절을 보내기 위해 찾은 다양한 직업의 소유자들이 만나기 마련이어서 화젯 거리도 다양하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누구나 자신 있게 의견을 피력하는 공통의 화제는 아무래도 정치판이다. 지난 설의 화두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였다면 이번 추석에는 내년도 대선이었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연휴 기사거리로 대권후보들에 대한 지지도 조사 결과를 담고 있었고, 여야 모두 변수가 있어 각자의 기대와 분석을 담은 이야기들이 한바퀴는 돌아서야 끝이 난다. 정계 개편과 관련해 여당 후보로는 누가 유력할 것이냐는 이야기부터, 한나라당의 오픈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 도입여부까지 빙빙 돌다보면 결국은 각자의 선택문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막상 선택의 문제로 다가서면 어느 쪽도 선뜻 내키지 않으며, 그렇다고 전혀 색다른 대안도 없어 선택을 어렵게 하는, 이른바 계륵(鷄肋)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명절의 수다내용을 들여다보면 계륵이 정치뿐만이 아니다.
이제 한달 남은 대입 수능시험에 이르면 이야기는 보다 현실적이 된다.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힐난하면서도 우리 아이는 조금 더 좋아 보이는 대학에 보내야 한다. 최근 서울시의 공무원 시험에 10만 명 이상이 몰렸다는 대목에 이르면, 대학 보내는 문제를 훌쩍 뛰어넘어 졸업 후의 취업걱정에, 경제가 좀처럼 안 풀린다는 이야기에 한참을 머물러야 한다.
불변의 진리로 치부해왔던 유클리드 기하학도 통용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두 점을 연결하는 최단 거리는 직선이라고 배워왔고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믿어 왔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비행기의 최단 항로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그린다. 지구가 둥굴기 때문이다.
요즘 남자들의 수다는 대부분 장수(長壽) 리스크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해 많은 사람들이 한 두 개쯤의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오래 사는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수명이 74세를, 여자의 평균수명은 80세를 넘어섰다. 퇴직 후에도 20~3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생활비는 어떻게 조달할 것이며 무엇을 하며 노후를 보내야 할지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시대가 오랜 기간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극복하려고 했던 장애물들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에서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입장에 올랐어도 결국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한 문제들, 또한 제기 됐어야 했지만 피하거나 간과했던 문제들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다.
추석 명절이 끝나자마자 북한의 핵실험 강행이라는 사건이 남자들의 수다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DJ 정부이후 일관되게 추진돼온 각종 대북 정책들에 대한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이고 많은 개별 사안들이 계륵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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