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과학의 추억을 넘어서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발효과학의 추억을 넘어서

<사이언스칼럼>

  • 승인 2006-10-10 00:00
  •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전시연구팀장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전시연구팀장
시골집 아랫목은 겨우내 발효공장이었다. 언제나 청국장과 술이 익고 메주를 띄우는 퀴퀴한 내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이 시골집의 강한 인상 가운데 하나였고 우리 겨레의 건강을 지켜온 어머니들의 손맛이었다. 된장, 간장, 고추장, 술을 담그는 손맛은 대대로 며느리에게 이어져 내려오면서 한 집안의 맛을 상징하기도 했다. 묵을수록 맛을 내는 것이 장맛이고 술맛이었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발효음식에 익숙해져서 우리 고유의 발효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저 시중에 범람하고 있는 발효 제품들을 떠올리며 발효음식은 몸에 좋은 것이라고 느끼는 정도인 것 같다.

발효음식을 얻으려면 우선 곡물을 발효시킬 수 있는 효모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이 효모는 각각의 발효음식에 따라 다르다. 발효음식의 대표적인 술의 경우에는 먼저 누룩을 디딘다. 누룩은 주로 밀기울로 디디는데 밀기울은 밀을 빻아 가루를 내고 남은 찌끼를 말한다.

우리 어머니들은 음식쓰레기에 불과한 밀기울로 술을 발효시킬 수 있는 효모를 생산하는 바탕으로 삼았다. 이 밀기울이 적당한 수분을 유지하도록 반죽하여 누룩딛는 틀에 꼭꼭 넣고 눌러 덩어리를 만들어 띄운다. 즉, 밀기울로 만든 누룩을 띄우면 누룩곰팡이가 생겨나서 전분을 당분으로 바꾸는 작용을 하여 술이 익게 된다.

누룩과 술밥, 각종 꽃과 약재들을 물에 섞어 술독에 넣고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 놓으면 부글부글 끓으면서 술이 익는다. 잘 익은 술독에 대나무를 엮어 만든 용수라고 하는 고깔처럼 생긴 도구를 박아 가운데에 모인 술을 떠 낸 것이 바로 맑은 술(동동주)이다. 맑은 술을 떠내고 난 뒤 체로 걸러낸 술이 막걸리가 된다. 이 막걸리를 거르고 난 술지게미도 버리지 않고 먹거나 거름으로 썼다.

어릴적 달짝지근한 술지게미를 먹고 술기운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기억이 새로울 것이다. 먹다 남은 막걸리가 쉬어서 못 먹게 되면 따뜻한 부뚜막 위에 있는 초병에 넣고 다시 발효시키면 양조식초가 된다. 이렇듯 누룩을 디뎌 술을 담그고, 술을 걸러 먹다 남은 막걸리로 양조식초를 만들어 먹었던 우리 선조들은 발효과학의 귀재였다.

된장이나 간장도 콩으로 메주를 쑤어 적당한 덩어리로 만들어 볏짚으로 묶어 처마밑에 매달아 자연스럽게 띄우고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켜 된장과 간장을 만들었다. 볏짚에는 바실루스 서브틸리스라고 하는 효모균이 있어서 이 효소의 작용으로 발효된 우리 된장과 간장은 항암효과를 갖는다고 한다.

고추장도 먼저 백설기와 같은 고추장 메주를 적당히 띄우고 말려서 가루를 낸 다음에 쌀이나 밀가루와 고춧가루를 버무려 발효시킨 것이다. 이 밖에도 청국장, 김치, 식혜, 젓갈 할 것 없이 우리 고유의 음식에는 우리 선조들이 생활속에서 일궈온 발효과학의 슬기가 듬뿍 배어 있다.

특히 깨끗하고 맑은 자연속에서 발효된 음식속의 유용한 성분과 발효균들이 지금의 오염된 환경이나 변화된 환경속에서 띄운 발효음식보다 훨씬 많이 들어 있어서 건강에 매우 좋다고 한다. 건강의 소중함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는 현대 생활속에서 우리고유의 발효음식에 관심을 갖고 추억을 넘어 일상생활로 끄집어 내 보도록 하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1.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2.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3.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4.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5.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헤드라인 뉴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교원들의 골머리를 썩이던 생존 수영 관련 업무가 내년부터 대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로 완전 이관된다. 추가로 교과서 배부, 교내 특별실 재배치 등의 업무도 이관돼 교원들이 학기초에 겪는 업무 부담은 일부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대전교육청에 따르면 2025년부터 동·서부교육청 학교지원센터(이하 센터)가 기존 지원항목 중 5개 항목의 지원범위를 확대하고 학교에서 맡던 업무 4개를 추가로 지원한다. 먼저 센터 지원항목 중 교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생존 수영 관련 업무는 내년부터 교사들의 손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현재 센터에..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