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 주변에 있던 대전의 많은 문화공간은 대체로 단명했다. 몇 해 전 헐렸지만 1935년에 세워진 옛 중앙극장이 해방되면서 한동안 ‘시공관’으로 사용되었으며, 60년대에는 중앙통의 중심에 옛 충남상공진흥관을 예총으로, 옛 문화원자리에는 ‘시민관’이 있고, 그 4층에 대전문화원이 있어 60년대 문화의 거리로서 명맥을 겨우 유지해 왔다.
그러다가 1981년 동양백화점이 세워지면서 대전문화원이 문화동으로 이전하게 되는데, 이즈음 국군병참학교자리의 정문 부근에 널따란 대지에 자리를 틀고, 시민들의 강력한 문화욕구에 따른 ‘대전 시민회관’이 들어선다.
오랜 준비 끝에 1975년 지하1층, 지상4층의 시민회관이 세워지는데, 착공일이 우연히도 육영수여사가 피살되는 날이었다. 당시 시의 궁핍한 예산으로 설계를 떳떳하게 외주에 주지 못하고 지역 건축가에게 협조를 받아 시청직원과 함께 도면을 작성하여 시공 할 정도로 어렵사리 마련한 공연문화공간이었다.
3년여 걸친 공사 끝에 1978년 준공한 후, 1985년에 후편의 ‘한밭승공관’까지 합쳐 2005년 바뀔 때까지 30여 년간 문화의 산실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준공 당시의 규모나 시설로는 타 도시에 뒤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시설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음향설비나 무대장치가 낙후 되어 빛을 잃어가는 느낌이 들지만, 접근성이 용이하여 유일한 시민문화의 보금자리 역할을 해왔다.
이후 신도심의 개발에 밀려 시청사가 둔산으로 이전하면서 유명무실한 기능만을 간직한 채 버티다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시민회관을 지키겠노라고 강력한 주장을 하던 시민대표들은 서서히 입을 다물고, 당국의 처사만 지켜보면서 초라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둔산에 새로 개장한 눈썹을 힘껏 추켜세운 엄청난 시설인 ‘문화예술의 전당’에서는 대중가수의 공연도 불허하고, 시립 미술관에는 순수미술 외에는 사용불가를 외치며 고고히 서있으니, 대중문화와는 거리를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분명하다. 시민 대중문화가 한편으로 치우친 대접을 받아서는 안되므로,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시민회관은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튼 ‘연정국악원’의 운명은 묘하다. 처음 설립 당시, 옛 대흥2동사무소 앞에 있던 시립전당포에서 중구청 뒤편 우남도서관으로, 이제는 시민회관으로 옮겨와 자리했지만, 연정국악원이 자리만 틀고 장단을 맞추려들면 둥지를 옮기게 되고, 건축물은 부숴버리는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없어지기 직전의 건물로만 들어가는 새로운 징크스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중요한 자료를 많이 소유하고 있는 연정국악원을 앞세워 대전을 국악과 연극의 중심으로 만들려 한다면, 부숴버릴 건물에 들어가는 것이 만사가 아니고, 새로운 자리로 확고히 자리를 틀게 해줘야 한다.
얼마 전 어렵게 마련한 140억 원이라는 적잖은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하여 다시 꾸며 보려했지만, 참여 측의 입장에서 화약을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 되어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일부만을 수리해 현 체제로 연명하기로 했다는 보도에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국악 공연은 음향`조명 설치가 일반 공연장과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곳에 국악 전용 극장을 마련해야 한다. 이참에 진정으로 국악을 살릴 의지가 있다면, 제대로 된 전용 시설을 번듯하게 지어서 따로 입주시키고, 시민회관은 대중공연`전시 등 다목적 공연장으로서의 옛 기능을 다시 부여해야 한다. 조금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부숴 없애는 정책보다는, 주변을 아끼고 보존하는 전통을 살려 시민들의 많은 옛정서가 깃든 시민회관을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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