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경희 충남고 교사 |
평소에는 일반 학급에서 수업을 받다가 필요에 따라 개인 지도를 받는 이동수업 형태다. 예를 들면, 소리 지르는 학생은 음악처럼 통합이 용이할 때에는 일반 학급에서 수업을 듣지만, 영어 등 정숙해야 할 수업에는 특수 학급에서 수업을 받는다.
학년 초, 담임선생님이 배부한 요양호자 명단에 ‘정서장애’로 표기된 석이는 유난히 피부가 갓난아기 같이 뽀얗다. 내 수업시간마다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늘 엎드려 있거나 무엇인가에 골몰해 있다. 간혹 쉬는 시간에 오고가면서 복도에 놓인 목재의자에 벌렁 누워서 코 후비고 있는 모습을 본다.
가을 햇살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날이었다. ‘결혼’ 단원을 가르치면서 좀 더 활기찬 수업을 진행하고자 ‘즉흥 모의 결혼식’ 역할놀이를 해보았다. 먼저 10분간 수업안내를 한 뒤, 나머지 40분 동안 학급 전원이 협력하여 역할극을 해내는 것이다. 교탁을 중심으로 책상을 양쪽 벽에 밀면 금세 근사한 결혼식장 무대가 완성된다.
이어서 신랑, 신부, 주례, 사회자, 하객 등의 역할을 정해야 한다. 한바탕 시끌벅적한 소동 끝에 적임자를 추천하여 배정한 뒤, 교실 내에 있는 물건을 소품으로 활용한다. 하복 상의 교복으로 만든 면사포, 신문지로 만들어진 부케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창출된다. 결혼식 절차가 웃음 속에 순조롭게 거행되었다.
축가로 정민이와 웅빈이가 포지션의 ‘I love you’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석이가 벌떡 뛰어 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온몸을 흔드는 열광적이고 현란한 춤사위였다. 모두 넋이 나갔다.
사회자는 이 돌발 상황에 “네. 신랑친구의 축하 댄스가 이어지고 있습니다”라는 즉석멘트를 날렸다.
애초 나는 이 모의 결혼식과정을 통하여 어떤 절차를 익히기보다 학급 전체가 힘을 합쳐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것, 즉 공동체의식을 깨우쳐 주려는 의도였다. 이들이 그것을 해낸 것이다.
축하공연이 끝나자 모두 박수를 쳤다. 그때였다. 창수와 영민이가 석이를 향해 양팔을 활짝 벌리는 게 아닌가. 석이는 덥썩 달려들어 안겼다.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이들은 진짜 ‘통합’하여 어우러진 것이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통합교육의 존재 이유다.
문득 언젠가 장애아 학부모로 산다는 것은 끝없는 ‘투쟁’을 의미한다고, 그래서 자신이 ‘싸움닭’같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던 분에게 이 장면을 보여드리고 힘내라 하고 싶어졌다.
이제는 통합교육에 장애학생의 사회 적응력 향상은 물론 비장애학생들에게도 장애에 대한 편견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걸어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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