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현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생체신호계측연구단 |
그러다보니, 홍보팀에서는 종종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강의나 실험실 소개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면 어떠한 주제로 학생들에게 우리 연구소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소개할까를 많이 고민하게 된다.
‘과학이란 무엇인가’부터 현재 연구하고 있는 ‘심자도란 무엇인가’를 거쳐 ‘노벨상은 누가탈까?’라는 내용까지, 방문 대상에 따라 다양한 주제로 강의 내용을 고민한다. 하지만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 등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요즘 아이들에게 몇 장의 사진과 슬라이드를 통해 한 시간 동안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주제를 정하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러던 중 고민 끝에 아이들을 위해 최근에 준비한 내용은 바로 ‘과학, 표준, 그리고 꿈’이다. 우선,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정리하면서 사진도 넣고, 내용도 정리했다. 3~4일의 짜투리 시간을 투자하여 한 시간 분량의 강의 자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 강의는 서울 모처의 한 지역 고등학교 과학영재반 학생들을 위한 것이었다. 강의 시작 전, 나는 아이들에게 그날의 강의제목을 보여준 후 물었다. “꿈이 무엇인가요?”라는 나의 질문에 아이들은 “…과학자요”, “…수학자요”, “…물리학자요”라고 열심히 대답했다.
과학영재반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나름대로 과학이나 기초물리 등과 관련된 꿈을 이야기 했다. 그 중 한 아이는 “연구원이요”라고 대답해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나를 기쁘게도 해 주었다. 앞줄의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다가 맨 뒷줄에 계신 선생님께도 “선생님은 꿈이 무엇인가요?” 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곧장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요즘 제가 만들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현재의 제 꿈입니다”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날 내가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꿈’은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존 고다드라는 10대 후반에 127가지의 꿈을 적어놓았다. 그리고는 그의 나이 47세가 될 때까지 104개의 꿈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의 꿈에는 이집트 나일 강 탐험하기부터, 브라질 이과수 폭포 사진 찍기, 비행기 조종술 배우기, 독수리 스카우트 단원 되기, 그리고 타잔 영화에 출연하기까지 매우 다양했다. 그 외에도 1분에 50회 타자 치기, 독사의 독 빼기, 불 위를 걷는 것 구경하기나 턱걸이 20회 유지하기 등 매우 독특하고 구체적인 꿈이 많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학위를 마치고, 직장을 잡으면서 언제인가부터 나에게 ‘꿈’이라는 단어는 나의 언어가 아니라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 아들의 단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남은 것은, 그것을 꿈이라 하기에도 왠지 쑥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저널에 언제 내 이름을 올려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남아있었다. 물론 그것도 좋은 꿈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지만.
그날 나는 그 서울의 과학영재반 아이들에게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그 중1927년 솔베이 회의라는 학술대회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여기에서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얼마나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했는지, 노벨상의 영예를 얻은 과학적 사실들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더불어 우스갯소리로 과학자가 벼락부자가 되는 방법 등도 말해주었다.
그러나 이날 강의를 들은 아이들이 내 강의를 들으면서 마음속에 담아두기를 소망하는 것은, 그날 내가 해준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존 고다드라가 꿈꾸었던 그 이야기들을 아이들이 오랫동안 두고두고 간직하는 것이다.
꿈꾸는 삶은 얼마나 활기찰까? 늘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 오늘 집에 가면 형이든, 누이든, 혹은 남편이든, 아내든, 아이들이든, 상대가 누가 되었든지 한번 물어보자. “이번 주 꿈이 무엇인가요?” 라고 말이다. 그리고 거울속의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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