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정선 공주대 교수 |
대전을 떠나 공암 고개를 넘어 공주에서 일차적으로 차멀미를 진정시키면 칠갑산의 험난한 고개가 기다리고 있어 한 걱정을 하곤 했다. 그러나 추석명절은 그래도 한결 견딜 만 했었다고 기억된다.
고갯길을 가기위해 굽이 길을 돌을 때 창문으로 들어오는 나뭇가지에 놀라고 후두둑 떨어지는 밤이 창으로 들어오는 요행을 기대하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었지 싶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험난한 고향 길을 많은 이들이 마다하지 않고 재미를 찾으며 그렇게 밟았으리라.
올 추석은 해외여행이 특수를 누리겠다는 소식, 고향을 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통계치의 발표 등을 접하며 우리의 가슴 속에 있는 고향의 현실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건강한 부모님의 땀과 정성이 깃든 넉넉하고 풍성한 사랑의 품에서 자라 나이 들어 바라본 고향에는 등 굽은 부모님과 발뒤꿈치 터진 사이로 흙먼지 배인 아주머니와 마디 굵은 손을 내미는 아저씨가 계신다.
굽이 길 손에 잡히는 가을 정취대신 시원하게 뚫린 곧은 길 멀리 눈으로 보는 가을이 있다. 길가에는 고향에 오는 자식들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주는 훈훈함 보다 한`미 FTA협정 반대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혹자는 FTA협정을 국경 없는 세계무역경쟁에서 국익을 극대화 할 필연적인 과정이라 설명한다. 사회현실과 정책, 하물며 역사를 보고 이해하는 입장이 차이가 있거나 상이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터라 논쟁을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랫돌 빼어 윗돌 쌓아 지어진 집이 될까 걱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이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서울이 잘살면 온 나라가 잘살 수 있다고 강변하던 모 인사가 지방을 다니며 유화적 몸짓과 웃음을 짓고 지방이 살 길이라며 내어 놓는 처방에도 정부협상의 당사자들에게서도 시장에 내몰린, 팔을 것조차 지니지 못한 사람들 고향의 생이 손 앓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정책이 수혜자에게 어떻게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지, 그 영향은 특정 분야와 계층의 이익을 통해 평균적 수치에 만족해야 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오랜 시간 인내한 후 올지도 모를 혜택을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기다리면 되는 것인지 알기 쉽게 설명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죽어라 허리 굽혀 자식농사 지어 놓았더니 흙먼지 묻을까 고향 흙길을 까치발 딛고 가는 꼴이 되는 것은 아닐까? 머리로 답하지 말고 가슴으로 답해 주었으면 좋겠다. 삶으로 이해 못할 논리싸움에 지레 지쳐 손 놓고 앉아있는 고향집 어르신들과 그래도 살겠다고 고향을 지키는 형제들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언제부터인지 가을볕 아래 익어가는 황금물결의 벼와 반들거리며 뽐내고 얼굴 내민 붉은 사과 알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이 가슴 뿌듯한 자랑거리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기껏 해 온 일이 내 고향 특산품 팔아주기 등의 일 밖에 없는 우리의 무능함을 고백해야겠다.
농지 소유규모를 대량화하는 와중에 마지막까지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하는 이들이 스러지지않을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하고 농가 빚을 양산하는 농업구조를 바꾸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조금은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어 고향에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기를 소망해 본다.
지금은 고향 산에 조용히 누어 계신 아버지를 뵈러가는 길에 홀로 남아 자식들 기다리시던 먼 친척 할머니께서 반갑게 맞으시며 따 주신 풋고추를 입에 넣고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과 가슴 시린 아픔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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