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선아 시인.한남대 조교 |
추석을 전후해 빼놓을 수 없는 것중의 하나가 바로 벌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석을 맞아 조상들이 고이 잠들어있는 묘소를 찾아 어느새 자라난 잡풀을 제거하고 절을 올리며 고마움을 전한다.
나 역시 얼마전 벌초를 다녀왔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친부모님과 함께 조상의 묘를 찾았지만 올해는 달라진 게 있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추석이라는 점에서 친정이 아닌 시댁 ‘벌초’를 다녀왔다. 어렸을 때부터 늘 보아왔던 친정 ‘선산’이 아니라서 그런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결혼(結婚)의 사전적 의미는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음’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남녀가 서로의 조상들과 정식으로 관계를 맺음’이라는 뜻도 함께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혼이 남녀 개인의 만남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벌초(伐草)란 무엇일까. 벌초의 사전적 의미는 풀을 베는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초와 ‘금초(禁草)’, ‘사초(莎草)’의 의미를 혼동하여 사용하고 있다. 즉, 산소 주변의 웃자란 풀들을 베어내는 것이다. 금초는 잡풀이 나지 못하도록 방제하는 일을 뜻한다.
사초란 묘의 봉분을 보수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세월이 가면 비, 바람 등에 의해 점차 그 크기가 작아지거나 무너지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 봉분을 다시 높이거나 무너진 부분을 보수하여 입히는 일이다.
북한에 ‘벌초 자리는 좁아지고 베코 자리는 넓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다. 벌초를 마지못해 하는 탓으로 그 구역이 차차로 줄어들고, 작아도 될 베코 자리는 쓸데없이 자꾸 넓어지기만 한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되어 주되는 것은 밀려나고 부차적인 것이 판을 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산을 둘러보다 보면 필요 이상으로 묘에 치장을 한 경우를 보게 된다. 일부 권력자들과 재력가들은 조상의 묘를 화려하게 치장한다. 비싼 수입 대리석으로 비석을 새로 세우고 온갖 동물문양 돌들을 묘 주위에 진열해 놓는다. 그 모습은 사뭇 장엄하나 썩 보기 좋지만은 않다.
반면 오랜 시간동안 후손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온갖 잡풀들이 묘소를 감싸고 주변에 자라난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 적막함이 가득한 묘소들도 많다.
그래도 여전히 상당수의 묘소들은 소탈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년 돈을 들여 타인에게 벌초를 의뢰하는 장엄한 묘소보다는 후손들의 따뜻한 손길과 발길이 느껴진다. 시댁 조상들의 묘소 역시 화려하지는 않지만, 햇빛 잘 드는 곳에 돌 지난 아가 머리마냥 보송보송하게 잘 다듬어져있는 묘가 더 오붓하니 정감이 간다.
“성묘를 하고 무덤에 벌초까지 끝내자 아버지와 우리 오누이들은 싸 가지고 온 과일과 떡과 달걀을 나누어 먹기도 했다” 김원일-『어둠의 혼』중에서 어렸을 때, 친정아버지와 함께 했던 소박한 벌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