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전에는 “풍요와 결실의 계절”이라거나 “땀 흘려 일한 보람”이라는 말을 무심코 하면서 그것을 이루기까지 쏟은 땀과 정성과 자연의 이치까지를 깊이 생각하지 못했음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리고 그 말들이 담고 있는 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어설픈 짐작에 의존해서 생각하고 말한 것에 대하여 속으로 멋쩍어 해보기도 했다.
지난 봄, 뜻을 함께 한 직장 동료들 몇이서 땅을 빌리고 ‘토요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흙을 일군지 몇 달, 벌써 가을이 되고 이제 ‘거둠’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상추,오이,가지,고추,감자,고구마,옥수수,호박… 꼽아보니 무려 열네 가지나 되는 작물들이 한 치의 땅도 놀리지 않으려는 초보 농군의 욕심 덕에 날개를 제대로 펴보지 못한 채 어깨를 부비며 그런 대로 잘 자라 주었다.
농약 한번 치지 않았어도 통통하게 살이 오른 빨간 고추, 넉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달덩이 같은 누런 호박, 선홍색 빛깔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 고구마를 캐는 흐뭇함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한다.
어느 날은 먼동이 트는 새벽부터 이슬 밭을 헤치기도 했고, 땅거미 내려앉는 저녁까지 작물을 어루만지며 일하면서 얻은 것이 참으로 많다.
처음 내손으로 채소를 가꾸어 가족들 먹고 이웃에도 한 움큼 나눠주는 기쁨과, 서툰 일손이지만 가족들이 함께 땀 흘려 일하는 가운데 정을 두터이 하는 덤도 얻었다.
동료 간 우의를 두텁게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농사 외에도 함께 어울려 지리산 노고단에 오르고 서울 청계천 야경을 감상하며 충주호반을 가르는 뱃머리에서 정겨움을 더하니 그 즐거움을 어디에 비기랴.
10월에는 산을 찾아 고운 단풍빛깔에 물들어 보자는 약속이 기다려진다. 추석에 와서 네게 주려고 갈무리 해둔 밤고구마 맛을 보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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