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자연과 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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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숙인 자연과 법조

<중도 마당>

  • 승인 2006-09-25 17:58
  • 권선호  권산부인과 원장권선호 권산부인과 원장
지난
▲ 권선호  권산부인과 원장
▲ 권선호 권산부인과 원장
주말에는 친구들과 지리산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친한 친구와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로 시간가는 줄 몰랐지만 밖에 보이는 들녘은 풍년을 예고하듯 황금 들판 그것이었습니다.

지난 여름 우리나라에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폭염이 한 달 가량 기승을 부려 전 국민이 무더위에 허덕여야 했고, 영동, 영서지방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폭우로 수많은 생명과 가옥, 재산을 잃는 참화가 있었습니다. 많은 산을 올라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설악산이 무참히 갈퀴고 무너져 내린 일은 자연재해의 무서움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큰 아픔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 보이는 황금들녘은 자연과 인간들을 괴롭히던 무더위, 장마와 자연재해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잊게 만들고 있고, 설악산에서는 곱게 물든 반가운 단풍 소식이 들려오고 있군요. 지리산 고원의 능선 길 위에도 가을 날씨와 가을 소식들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춥던 겨울을 이겨내고 싹을 틔운 초목들이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더니 이젠 열매와 씨앗은 달고 깊은 상념에 젖어 있었습니다. 다만 가을꽃인 산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각시취, 용담, 산비장이들이 색 바랜 가을 산등성이 위에서 그윽한 색과 향으로 청초하게 가을을 노래하고 있었고 무수히 피어있는 억새들은 밝은 가을 햇살을 즐기며 인고의 세월을 지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이렇듯 자연의 식구들은 좋은 조건들뿐만 아니라 갖은 악조건 하에서도 적응과 인내를 하고 아름다운 결실을 통해 자기의 생을 다하며 자연과의 조화와 섭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헌법재판소장 임명을 두고 벌어지는 일들을 뉴스를 통해 접하노라면 성차별과 가정일 등 몹시도 어려웠을 역경을 딛고 그 자리까지 올라갔던 모재판관의 인간승리에 박수와 갈채를 보냈던 많은 국민들로서는 또 다른 큰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끼며 착잡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다 대법원장이 한 말을 놓고 검찰과 변호사 협회가 반발하고 나서, 법조 삼륜이 싸움을 벌이는 듯한 모습은 국민들이 보기에 민망합니다. 법(法)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이 “나 잘났고 너 못났다”고 싸우는 꼴로밖에 안 보입니다.

아름다운 가을 능선을 수놓은 많은 억새들도 일년 중 가장 화려함을 자랑할 때이지만 고개를 한껏 숙이고 있고, 씨앗이나 열매를 달고 있는 초목들은 어렵게 피어나 한때의 영화를 누리고는 자연의 섭리를 충실히 따르며 꽃잎을 떨군 다음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법조 삼륜 갈등의 해결책도- 어쩌면 인간사의 모든 문제를- 고개숙인 자연에서 배워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산길을 걸으며 만나는 자연의 식구들이 우리들을 인간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맹자가 일컬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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