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영균 산림청 자원정책본부장 |
높고 푸른 하늘과 상큼한 기분이 가을을 노래하지만, 붉게 물든 단풍나무와 더불어 한 해를 정리하는 숲의 변화는 정말 가을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우리는 겨울이 되면 올해도 저물게 됨을 느끼며 마무리를 시작하지만, 숲은 가을부터 한 해의 수확과 더불어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에 정성을 기울인다.
나뭇잎 공장에서 뜨거운 태양 에너지를 양분으로 바꾸며 열심히 성장하던 나무들. 더운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며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던 나무들은 가을이 되면 초록빛 옷을 노란색과 빨간색 옷으로 갈아입으며 형형색색의 조화로움을 뽐낸다. 이 조화는 다채로운 옷을 갈아입는 모습이 아니라 초록색의 단조로운 옷을 벗어 버리며 숨겨져 있던 몸의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누드 콘테스트라고 할 수 있다.
원래 나뭇잎은 노랑, 빨강, 녹색을 띠는 물질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런데 가을이 되면 광합성의 주역이던 녹색의 엽록소 성분이 빠져나가고 녹색 옷에 덮여있던 노란색이나 빨간색의 색소가 숨겨진 모습을 드러내면서 장관을 연출한다.
이 때 이동하는 것은 엽록소만이 아니다. 낙엽을 만드는 나무들은 나뭇잎에 들어있던 질소나 인산 등 중요한 양분을 나무줄기로 옮긴다. 내년에 새순이 나올 때 땅에서부터 양분을 끌어 쓰느라 고생하지 않도록 나무줄기로 양분을 옮겨 저장하면서 다음 세대를 배려하는 지혜이다. 땅에 양분이 많다면 이러한 노력을 적게 하지만, 자라던 곳의 흙에 양분이 별로 없다면 각종 물질을 열심히 옮기면서 철저히 재활용하기 위하여 애쓴다.
나무가 이러한 움직임을 나타내기 시작하면 그와 더불어 살아가던 숲 속 친구들의 삶에도 변화가 생긴다. 나무뿌리에 붙어살며 나무의 광합성을 통해 생산된 양분을 받아먹던 곰팡이도 자신들의 삶에 큰 소용돌이가 다가옴을 깨닫는다.
편안히 살 수 있던 좋은 시절이 지나고 차가운 계절이 오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 그들은 후손을 만들기 시작한다. 흙 속에서 서로 뭉치고, 뭉쳐진 곰팡이는 땅 위로 나와 후손(포자)을 퍼뜨린다. 그것이 바로 버섯이며, 가을에 숲 속의 진미(珍味)로 다가서는 ‘송이’와 ‘능이’ 버섯은 우리에게 친숙한 친구들이다.
비가 오면서 온도가 떨어지면 흙을 뚫고 나오는 버섯은 더욱 열심히 자라는데, 온도가 천천히 떨어지면 버섯도 천천히 자라지만,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면 버섯이 자라는 속도 또한 매우 빨라진다. 그래서 다소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늦가을에는 땅에서 솟아나는 버섯이 자라는 모습을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가을은 여러 생물이 어우러져 사는 숲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 나뭇잎의 색이 변하는 것과 더불어 나뭇가지 속에서 많은 물질이 이동하며, 땅 속에 숨어 생활하던 곰팡이의 삶도 변하게 만든다. 이번 가을에는 무심코 산행을 하지 말고, 숲 속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길 제안한다. 용혜원님의 시 ‘가을을 느끼려면’에서는 “가을을 느끼려면 가슴에 젖어드는 가을바람 속을 걸어 들어가라”고 한다.
그렇듯 숲을 이해하고 느끼려면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가을 숲을 걸어 보자. 단풍잎처럼 눈에 띄는 모습만이 아니라 쉽게 알 수 없도록 조용히 변하는 나무줄기 속과 땅 속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여 보자. 한 해를 우리 인간보다도 먼저 정리하며 새 환경을 준비하는 숲의 모습을 통해, 자연의 신비로움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는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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