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성 사회부장 |
이 같은 물음에 지역에서 소규모 토목업에 종사하는 김모 사장은 “며칠 동안 쉬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라며 “올해는 형편상 거래처 선물도 일체 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왠지 뒤통수가 무거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넋두리까지 늘어놓았다. 추석연휴가 이들 소규모업체에게는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조사한 100인 이상 224개 업체의 추석 휴무일을 보면 기업체 세 곳 가운데 한 곳은 올해 징검다리 연휴 기간 중 5일 이상 쉬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르노삼성자동차의 경우 9월 1일 창립기념일 휴무를 10월 4일로 대치해 9일 동안 쉰다는 것이다.
이 회사 직원들에게는 정말 ‘기다려지는 추석연휴’인 셈이다. 추석연휴에서도 업체 간의 빈부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추석이 기다려지는 우리의 고유 명절이 아닌 부담스런 휴무일로 여겨지는 이유는 다름 아닌 노무현 정권에서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 때문일 것이다.
대전지방노동청에 따르면 경기침체로 올 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충청권에서 발생한 체불임금은 모두 578억3900만원이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310억 1400만원에 비해 268억 원 이상 증가한 실정이다. 종업원 임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기업주에게는 ‘기다려지는 추석’은 커녕 아예 달력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경기침체를 버티지 못하고 아예 문을 닫는 업체는 또 매년 얼마이며 20~30대의 백수론은 이제 더 이상 이야깃 거리도 되지 못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사망원인통계결과’ 가운데 20~30대 사망원인에 대한 통계는 경기침체에 주눅 든 채 살아가는 대다수 서민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0대의 경우 인구 10만 명 당 17.7명이 자살, 사망원인 1위를 기록했으며 30대 역시 10만 명 당 21.8명이 자살해 이 또한 사망원인 1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의 20대와 30대의 사망원인 1순위가 놀랍게도 자살인 것이다.
젊은 죽음은 더 이상 말하지 않지만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 이유 가운데 상당 부분이 경기침체에 따른 극심한 취업난 내지는 가계파탄 등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대한민국 사람 가운데 하루 평균 33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드러나 한국민의 팍팍한 삶의 단면을 말해주고 있다. 어느 소설의 제목처럼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와 닿는 이 같은 현상은 좌충우돌만 거듭하는 노무현 정권이 하루속히 풀어내야 할 책무인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를 기록할 정도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그동안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국제 원유 가격의 하락이나 국제 원자재 가격의 하락에는 내년도 미국 경제의 침체 우려가 깔려있는데 그것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경제의 급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미 내년도 한국경제가 4.5% 성장할 것이라는 지난 4월의 전망치를 최근 4.3%로 하향 조정한 상태다.
서민 경제가 갈수록 꼬여들 것인데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은 줄곧 서민 생활안정에는 무관심하니 ‘기다려지는 추석, 풍성한 추석’은 이제 서민들에게는 희망사항이 되어버린 셈이다. 노무현 정권은 ‘비전 2030’을 통해 성장과 복지의 패러다임을 강조하지만 서민들 입장에서는 그 같은 거시적 정책보다는 올 추석 차례상에 놓을 송편 한 접시가 더 소중하게 여겨질는지도 모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실감나는 풍성한 추석 명절이 되살아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하여 가족끼리 힘겨움을 서로 보듬을 수 있는, ‘기다려지는 추석’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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