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제선 대전참여자치연대 사무처장 |
예산 낭비 사례를 신고 받아 시정하고, 신고자에겐 최고 3천만 원의 포상금도 준다한다. 정부가 국민의 혈세를 아껴 쓰기 위한 시민참여형 행정시스템을 만든 것이라 평가할만하다. 나아가 예산낭비를 막기 위해 재정민주주의의 확대라는 방향에 맞춘 것 자체도 반가운 일이다.
재정에 대한 논의가 민주성을 배제하고 효율성과 효과성에만 연연하게 되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인 관료집단의 전횡과 예산 편성에 관여하는 정치인간의 담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재정의 효과성과 효율성도 저하되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국무총리가 공동위원장으로 있는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이러한 방향과는 대치되는 결론을 내렸다. 바로 국민소송제(납세자소송제)의 입법을 포기한 것이다.
사개추위는 ‘장기적으로 국민소송제 도입이 바람직하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으나, 추가적 검토 및 구체적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 입법안을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 중앙부처 관료들의 극심한 반발에 굴복했다는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결정이다.
국민소송은 국가재정 낭비 사례에 대해 국민이 당사자가 되어 환수를 요구하고 환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직접 소송을 제기해 낭비된 예산을 직접 되찾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낭비에 대해서는 주민소송법이 이미 제정 시행되고 있기도 하고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실제 주민소송이 제기된 바도 있다.
국민소송제는 시민단체들이 200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도입운동을 시작한 이래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 현 정부 출범시기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채택되었고, 재정세제 개혁 로드맵에도 포함된 사항인데도 궁색한 추가 검토 필요성을 이유로 정부 스스로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주민소송제 도입 당시 지방정치인과 공무원들의 유사한 반발이 있었다. 정부는 ‘공익’의 명분으로 이를 제어한 경험이 있다. 그만큼 주민소송 및 국민소송제 도입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정부에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런저런 궁색한 이유를 들어 국민소송제 도입을 미루는 것은 중앙정부 관료들의 힘, 이기주의가 국민의 여론을 뭉갤 수 있는 대단한 것임을 깨우쳐 준다.
아니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하는 일을 중앙정부가 못한다는 것을 누가 납득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중앙은 지방보다 더 부패하고 낭비가 심하기 때문에 준비기간이 더 필요하다거나, 지방자치단체보다 중앙정부가 더 무능함으로 국민소송제를 도입 못한다고 밝히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중앙정부 관료들이 ‘소송 남발과 전문소송꾼 출현 우려’ 등 주민소송제 도입 때 지방공무원들의 주장과 똑같은 주장을 펴면서 국민소송제 도입을 반대하는 것은 극소수 비위 공무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수 국민의 정당한 권리 보장을 외면하는 납득할 수 없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관료들이 지배하고 있는 정부 기구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면 이제 정치권과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여야 공히 의원발의로 납세자소송법안을 내놓은 바도 있고, 한나라당에서 준비한 국가건전재정법안에도 국민소송제가 들어 있다.
국민소송제의 도입을 통해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 관료집단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재정민주주의의 확충이, 국민과의 약속이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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