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부녀자가 스스로를 낮추어 천첩(賤妾)이라 칭한 것만 해도 그렇다. '첩(妾)'을 풀면 '서 있는(立) 여자(女)' 아니던가. 들어앉지 못하고 서 있는 여자, 달리 말해 '창 밖의 여자'라는 뜻일 게다. 하늘보다 더 높아 하늘(天)을 뚫고 올라 남편(夫)이 되었다는 그 잘난 자존심에 비하면 얼마나 초라한지 모른다. '계집'은 또, '집에(나) 계시는(=있는)'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옛말에 계집은 제 고을 장날을 몰라야 팔자가 좋다고 했다.
예전에는 아내 자랑하는 사내, 아내 등 긁어주는 사내, (행인지 불행인지) 아내에게 손찌검하는 사내는 선비사회의 삼불출(三不出)로 매도되기까지 했다. 여자의 이름을 부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며, 적지도 말라는 지독한 역사를 우리는 갈무리하고 있다. 한다고 해야 겨우 '某甲의 妻 某氏' 정도가 고작인지라 하찮은 노류장화 기생일망정 예명만을 불렀던 것이다.
언어결정론에 비춰 본다면 앞서 든 사례들은 남성우월주의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내=남자에 속한 여인'의 어원을 가지는 헤브루어도 그 대표적 전형에 속한다. 이러한 언어구조에서도 유추가 가능한 바, 간음의 결과는 항상 여성 쪽에 유죄의 멍에를 지웠다. 남성은 반드시 처녀와 결혼할 것을 기대했으나 남성이 동정이어야 한다는 언급이 없는 모순도 당연시됐다. 여성은 다만 부정하고 종속적이며 열등한 존재였으니 천민, 만족(蠻族)과 함께 연약한, 따라서 천박한 족속으로 치부됐을 뿐이다.
그런데 바로 이 남성중심적인 현실은 남성중심적인 언어에 의해 조장된다고 볼 수 있다. 솔직히 우리 어휘체계는 남녀차별주의(sexism)의 요소가 강하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언어가 사고(思考)를, 사고가 행동(行動)을 지배한다고 보면 더욱 그렇다.
섹스(sex)를 버리고 젠더(gender)
이런 맥락에서 여성과 남성을 구별하는 용어로 지금까지 쓰던 섹스(sex)를 버리고 젠더(gender)로 바꾸기로 한 시도는 나름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세계여성대회의 결정이다. 근본적으로 '섹스'는 남녀의 차별과 고유의 역할분담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고 보면 말이란 이렇듯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다.
눈을 우리에게 둘러보면 개선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늦었다고 한탄하기 전에 더욱이 대중 침투력이 강한 매체인 신문(=_=;;)이나 방송은 물론 인터넷에서 이와 관련한 일단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무익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여자'와 '여성'을 놓고 볼 때 이것을 그저 사전적 의미로 구분하는 것은 한마디로 무익하고 무의미하다. 실제로 가치중립적인 사전의 규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혼선을 빚고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 '여자'는 여성인 사람, '여성'은 성별에 따라 이를 때의 여자로서 주로 성인에 많이 쓰인다는 규정만으로는 그게 그것인 개념상의 혼란만 불러온다.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여성'이란 두 글자는 사회관계 속의 인격의 일부로서 인식하고 차별하지 않는다는 의식이 들어 있으며, 따라서 사회적으로 동등하게 대접해준다는 배려를 상징하거나 은연중 담고 있다('equality'의 용어 정의를 '평등' 아닌 '동등'으로 한 점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글자를 풀이해봐도 '성(性)'은 곧 마음(心)이 생겨나는 것(生) 아니던가.
그저 타인처럼 덤덤히 지나치는 무심한 마음이 아니라, 서로 위해 주고 관심 갖는 마음일 것이다. 한국여성개발원 같은 데서 '여자노인' 대신 '여성노인'으로 용어 설정을 한 것은 매우 적절하고 선구적인 자세라고 여겨진다. 일부 장로교단에서는 목사 안수를 하면서 '여성목사'라 한다. 여성의 목사 안수는 뭐라고 부르기 이전에 이미 고무적인 현상임에 분명하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신문에서 아직도 '김영숙 여인(40)' 하는 식으로 '여인'을 간간이 호칭으로 쓰는데 차제에 고쳐졌으면 좋겠다. 관행이라 해서 무조건 정당하지는 않다. 어떤 신문사에서는 스타일북에 아예 '여인'은 경칭이 아니요, 남녀차별의 전근대적 관념을 깔고 있으므로 피하자고 못 박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여성의 경우도 일방적인 인명(人名) 표기에서와 같이 '씨'를 붙이면 그만인 것이다.
주로 성인에 잘 어울리는 특성 때문에 '여자어린이-남자어린이' 할 때나 '여자친구-남자친구' 할 때 여성이라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여성화장실-남성화장실'도 언어관습상으로 어색하다. 하나, <아를르의 여인>이나 <해변의 여인> 같은 작품명, '아름다운 나의 여인이여!'와 같은 시적 표현에까지 우직하고 '여성'을 쓰자고 우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바람난 여성', '아들의 여성'보다는 '바람난 여자', '아들의 여자'가 더 잘 어울리고, '남자관계-여자관계' 역시 자연스럽다. 어떤 여학생이 수석을 했다면 '여자수석의 영예를 안았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학교와 관계된 어휘에서 '여자중학교, 여자고등학교, 여자대학교'를 쓰는 점도 일견 합리적이다. 그러나 '여성공직자, 여성경찰관'의 경우라면 선뜻 '여성'을 갖다 붙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현실에서 너무 굳어져 불가피하거나 썩 어울리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자'에 대하여 '여성'을 기본어휘로 삼아야 바람직할 것이다. 각종 단체명을 보더라도 '기독교여자청년회(YWCA)'처럼 예외도 있지만 대체로 '여성단체협의회', '여성민우회', '여성의 전화', '여성회관' 등으로 정착되고 있음을 본다.
여성형 어휘는 여성에게 차별을 주기 위해서 생성됐다고 보면 거의 무리가 없을 듯하다. 남선여종(男先女從)은 때로 불평등보다 조화로 파악되지만 인류사회, 그중 한국사회는 누가 뭐래도 남성중심이었다. 사회의 기본어휘가 남성어휘라는 사실이 하나도 이상할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차별의 근원인 여성형 어휘
개중에는 '남존여비(男尊女卑)-여존남비(女尊男卑)'처럼 겉보기에 평등한 어휘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 말들의 존재에 만족해야 할 만큼 사용은 극히 미미했다. 남녀의 평등을 표방하는 '남녀동권, 남녀평등, 남녀고용평등법'조차 말에 있어서는 '남(男)'이 앞서고 '여(女)'가 뒤따르는 형국이다. 남성이 앞서고 여성이 뒤따른다는, 아니 그래야 한다는 관념이 부지불식간에 언어에 반영된 셈이다.
여기서 '여류(女流)'라는 말의 정체를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 말은 여성의 열등함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우문(愚問) 같지만 여류화가, 여류시인, 여류문학가는 있는데 어째는 남류(男流)는 없는가 말이다. 주의하여 보면 단순히 성별 구분을 위해 생긴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럴 것이 '여류'는 '여자인데도 잘한다'는 차별의식을 그 밑바닥에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어적으로 동일한데도 '여자아이'만 표제어에 올라 있고 '남자아이'는 그렇지 아니한 사전이 있는 현상도 웃지 못할 대목이다. 전통사회에서는 '남자'는 '아이'일지라도 함부로 '아이'라 부르지 않았던 만큼 기원으로 보아 '여자'와 '아이'는 '남자'나 '어른'에 비해 낮은 어휘인 것은 안다. 명문가의 사정이지만 남자야 갓 나서는 아기씨, 조금 크면 도련님, 장가들면 서방님, 소과에 급제하면 진사님, 벼슬 하면 나으리, 영감, 대감, 노대감, 죽고 나서는 선대감……. 그랬으나 언제 '아이' 소리 한번 제대로 들어봤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세태는 참 많이도 변했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핍박받기 싫다면 유럽에서 일본이나 미국에서, 급기야 한국에서 '남성해방운동'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깃발을 꽂았다. '우먼리브(여성해방운동)'를 흉내내어 '맨스리브'라는 맞갖잖은 용어도 만들어 쓰고 있다. 탓할 일은 아니로되 생소하고 희한하다. 정상적인 남성 안에 여성의 성질(아니마 : anima)이 있으며 건강한 여성 안에도 남성적인 요소(아니무스 : animus)가 존재한다고는 한다.
그러나 무슨 거창한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여전히 성차별 언어의 확대재생산은 없는지 주위 환경을 둘러볼 때이다. 일본에서 합심하여 '미망인(남편이 죽을 때 따라죽지 못하고 남아 있는 여자)'이라는 단어를 없앤 선례는 우리에게 많은 걸 암시한다. 언어는 비단 언어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구조와 이념까지도 좌우한다고 말하면서, 무엇이 차별언어이고 아닌지를 여태 구분하지 못한다면 섞여 있는 콩과 보리를 가려내지 못하는 숙맥(菽麥)만큼이나 어리석은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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