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땅에 평생 고기만 잡아 생계를 이어온 어부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어부는 성품이 강퍅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으로 주위와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외톨이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어부생활이란 것이 그렇듯이 고기가 많이 잡히면 그런 대로 먹고살기에는 큰 불편이 없지만 늦가을부터 한겨울 해동하기 전까지는 여간 고단한 삶이 아니다. 더구나 이 어부는 자기 것은 결단코 내놓을 줄 모르는 고집불통이었기 때문에 주위로부터 도움은커녕 외면당하는 생활이라 고기를 잡지 못하는 기간은 신역만 고되었다.
때는 요즘처럼 막 늦가을로 향하고 있던 즈음, 신통치 않은 어획량으로 고초를 겪고 있는 이 어부는 그래도 늘 해오던 습관대로 이른 새벽 그물을 쳐둔 곳으로 배를 몰고 나아갔다. 어슴프레 물안개가 퍼져 오르고 수면위로 미끄러져 가듯 배를 부려가던 어부는 능숙하게도 그물을 쳐둔 곳을 찾아내고 서둘러 그물을 건져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한번 잡히지 않기로 한 고기들은 서로 담합이라도 한 듯 피라미 한 마리 구경할 수 없었다. 그물을 거의 다 걷어올릴 때까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어부의 한숨은 높아만 가고 있었다.
그물을 걷어올리기가 끝나갈 즈음 갑자기 그물의 무게가 더해지면서 어부는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다. 드디어 수면 위로 그물이 모습을 보이면서 어부는 놀라고 말았다. 바로 그 그물 속에는 팔뚝만한 생선이, 그것도 금빛 찬란한 고기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오랜만에 희열을 맛본 어부는 그물을 건져 뱃전에 쌓아놓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힘차게 노를 저어 나아갔다. 서서히 어둠이 걷혀가면서 하얗게 동이 터 오는 물길 위에서 어디선가 가냘픈 소리가 어부의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 좀 살려주세요. 그러면 할아버지의 소원 세 가지를 어떤 것이든지 들어 드릴게요.”
배를 멈춘 어부는 사방을 살폈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고요한 물뿐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고기를 낚았기 때문인지 환청은 아닌가?” 의심하여 배를 몰아갔는데 또다시 그물 쪽에서 “할아버지, 할아버지…” 애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배를 멈춘 어부의 시선은 바로 그물 속 번쩍번쩍 빛나는 고기에게 꽂혔다. 그물의 무게 때문인지 숨을 헐떡이던 고기는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할아버지, 저를 살려만 주신다면 그 어떤 내용이든지 간에 3가지 소원은 들어드리겠다”며 애원하는 게 아닌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어부는 고기에게 말하기를 “얘야, 내가 너를 살려 줄 터이니 5가지 소원을 들어주렴”하고 협상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저는 3가지 소원밖에 들어줄 수가 없어요.” “안 된다. 5가지는 들어줘야 한다”며 옥신각신하다가 “그러면 4가지로 하자”고 중재안을 내놓는 순간 고기가 숨을 거두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고 말았다.
요즘 우리 사회는 온통 ‘바다이야기’나 ‘전시작전통제권’등으로 조용한 날이 없는 게 현실이다. 과연 무엇이 정답이고 무엇이 옳은 일인지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다수의 국민들을 편가르기 현장으로 내몰지 말고 타협의 소산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인가 안타까울 뿐이다.
3가지 소원밖에 들어줄 수 없는 고기에게 무리하게 5가지의 소원을 들어줄 것을 강권하던 어부의 무지를 오늘 우리가 흉내내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봐야 한다. 고기의 목숨도 살리고 소원도 성취할 수 있는 슬기를 우리는 찾아내야 한다. 욕심 많은 어부를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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