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체도, 그 무엇도 없는 것을 가지고 하루에도 열 두번 더 행복과 불행 사이를 오가고 있다. 깊은 강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는 거와 같이 그럴 수는 없는 건지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어 본다.
일주일에 몇 번은 명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좌장을 하고 마음을 다스린다. 하지만 그것도 요즘 게을러져서 그런지 마음의 고요를 자주 놓치기 일쑤다.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것에도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세월`흔적`관계에 대한 집착, 허울에 대한 집착, 채워지지 않은 욕망과 안주하려 하는 마음 등등. 아마도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작품의 소재가 될 것 같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생각해오던 표현방식의 하나는 어떻게 적용시켜 어우러지게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빨강`노랑`파랑의 색깔은 들어갈 것 같다. 그리고 흰색으로 마무리되어 질 것 같다. 거기에는 29세의 나이에 인생을 비우며 사는데 주력하겠다는 당돌하리 만큼 지혜로운 어느 여성 영화감독의 비움의 철학이 담길 듯 하다.
아울러 비우지 못해 헉헉대고 있는 현재의 내 모습도 담아내리라 마음을 다잡아본다. 이런 내 모습을 돌아보면서 피식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음을 느낀다. 작품준비에 여념이 없으면서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음은 일이 있어야 행복함을 맛보는 천성때문이리라. 그래서 얼마간은 어느 때보다 행복해 질 것 같다. 새로운 작품에 몰두하고 있는 스스로를 돌아다보면 더욱 그렇다.
이럴 때면 웬만한 사건(?)들은 나에게 어떠한 파장도 주지 못하니까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더욱 더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즐기고, 무대를 즐기고, 고스란히 내 인생에도 적용돼 삶을 즐길 줄 아는 나였으면 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바라옵건대 외부의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완전히 내안의 나로 인해서 기쁨을 유지 할 수 있는 경지였으면 한다.
더 이상 인간의 마음, 그것이 아닌 다른 도구로 나의 마음을 치유하려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잘 닦여진 마음이라면 더 이상 이리저리 흔들리지도 않을뿐더러 이 세상 어떤 것에도 우뚝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마음이 잘 훈련돼 한 곳에만 집중한 채 안으로만 향할 수 있다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듯, 마음은 우리가 지닌 가장 뛰어난 도구라는 것을 왜 종종 잊어버리는 건지. 다시 생각해본다. 그 뛰어난 도구를 두고 나는 어디로, 어디를 헤매고 있는 걸까? 조용히 마음을 잠재우면서 외부의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내안의 나로 인해서 기쁨을 유지할 수 있는 경지였으면 한다고 다시 한 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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